한국일보

예전만 못한 월드컵 열기

2014-06-26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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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자의 눈

“2010년 대회때 만해도 그야말로 식당이나 클럽 마다 북새통이었는데 올해는 어째 분위기가 영~아니네요.

”월드컵 대목을 맞아 경기가 어떠냐는 기자의 물음에 대한 한 한식당 주인의 푸념 섞인 대답이다.

그 이유를 묻자 ‘예전만 못한 우리 팀의 전력도 문제지만 최근 한국의 어수선한 사회 분위기가 큰 영향을 주는 것 같습니다.”라며 말 끝을 흐렸다.


세월호 사고를 말하는 것이었다. 현실 따위는 잊고 신나게 한바탕 즐길 수도 있겠지만, 월드컵을 앞두고 발생한 대형 인명 사고로 실종자도 다 건져내지 못한 상황에서 축제 분위기가 날 리 만무하기 때문이다.

이미 세월호 사고 진상규명에 대한 목소리는 월드컵 열기에 묻혀 버린 듯 하지만 축구로 모두가 하나 되는 ‘통합’을 내세우는 월드컵의 의미를 사람들이 모를 리는 없다.

물론 매상이 증가해 즐거운 업주들도 있겠지만 열기가 기대에 못 미치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하겠다는 생각이다.

지난 15일 맨하탄 타임스스퀘어에서는 세월호 참사와 한국정부의 무능한 대처를 규탄하는 시위가 펼쳐졌다. 3번째 시위였다. 업스테이트 뉴욕에 사는 한 한인 여성은 운영하던 리커 스토어를 팽개치고 시위에 참여했다.

롱아일랜드와 퀸즈 플러싱에서 비즈니스를 잠시 접은 한인상인들도 삼삼오오 모여들었다. ‘세월호를 잊지 않는 뉴욕 엄마들의 모임’이 주축이 된 시위에는 엄마들의 모임이라는 말이 무색하게 참여자들의 성별과 연령이 다양했다.

수만명이 모이는 대규모 시위는 아니었지만 이들의 시위는 현재 우리 사회의 분위기를 대변하는 듯 했다. 같은 날 월드컵이 진행 중인 브라질에서는 경찰이 시위대에 실탄을 발포하는 사건도 발생했다.

월드컵 경기장을 짓기 위해 그 주변의 주민들을 강제 퇴거시킨 데 대해 주민들이 시위를 벌이자 정부 당국이 과잉 강제 진압을 한 것이었다.


월드컵과 정치, 경제 모두 뗄래야 뗄 수 없다.

그러나 소비자들이 사회에 대한 믿음을 잃으면 월드컵 열기는 커녕 소비 심리 위축으로 이어진다. 월드컵은 사람들을 하나로 뭉치는 통합의 상징 같은 존재가 되어 왔던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이번 브라질 월드컵은 좀 다르다.

브라질에서는 월드컵 때문에 소외된 이웃들이 발생했고, 한국에서는 세월호 진상 규명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허공 속에 메아리 치고 있다.

최희은(경제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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