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천재들의 행진

2014-06-23 (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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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윤태(시인)

역사책을 읽다보면 우리나라 고사(古史)에도 천재들이 심심치 않게 여기저기에서 시대별로 나타나지만 이씨조선 시대에 와서는 천재들의 등장이 재미있게 나타난다.
30세에 과거급제를 한 윤경이란 사람은 그로부터 60년이 지난 90이란 나이에 공조판서란 벼슬을 하사 받고 지내다가 98세에 죽었으니 이조의 건국도 그러하지만 참으로 불가사의한 경우를 살다 간 사람이었다.

우리나라 최초의 과거시험은 태조 2년 1393년 3월에 실시한 식년문과 과거시험으로서 인재를 널리 발굴해서 쓰는 지금의 고등고시와 같았던 제도였다. 최초로 과거급제 한 인재는 태종 이방원의 측근이 되는 이숙번이다. 그는 이방원의 왕자의 난을 성공적으로 이끌었던 무관보다도 더 장수 기질이 많았던 천재로서 그 기질이 방탕하고 오만방자하여 결국에는 삭탈관직 당하고 경남 함양으로 유배를 가 살다가 68세로 거기에서 죽었다.


이씨조선 오백년 역사에서 가장 빛을 낸 천재는 이이였다. 9번을 과장에 나가 9번 모두 장원급제 한 특이한 천재 이이, 49세란 젊은 나이에 죽었지만 병자호란을 겪으면서 백성들에게 가치관을 성립해 주었다.

당쟁으로 뒤얽혀 시끄럽게 이어져 가던 이조, 이황의 후학들이 대개 동인과 남인이 되었듯이 이이의 후학들은 대개 서인이 되어 높은 학문을 가지고서도 험한 당쟁을 일삼아 구석구석 나라를 곪게 만들었다. 당쟁이 한참 심한 숙종 시기에 급제한 윤증 또한 천재의 대열에 속했다.

충남 논산시 노성면에 있는 그의 고택은 충청도 양반의 본거지로서 정치를 논하는 사람들이나 학자들이 많이 모였던 곳으로서 이곳에서 윤증을 중심에 두고 당쟁으로부터 벗어나 대통합의 정치를 구현하고자 외쳤던 곳이었다.

주자학을 절대시 한 송시열, 31세부터 20여 차례 벼슬 제수를 받았으나 모두 사양을 하다가 숙종의 얼굴을 한 번도 보지 못하고, 81세 노년에 정승에 올라 재야인 소론의 영수가 된 윤증, 50년 동안이나 과거에 낙방하다가 83세에 드디어 급제하여 병조참의란 벼슬을 받고 겨우 지낼 만하더니 그 이듬해에 죽어버린 박문규, 7개국 언어에 능통했던 신숙주 등은 모두 천재의 반열에 들어도 손색이 없는 인물들이었다.
지금 이 시대에도 한국이나 이민사회에서도 천재는 계속 나온다. 미전역에서 모여 드는 우수한 학생들 가운데에서 수학경시대회라던가 과학 경시대회에서 두각을 나타내는 한국 학생들이 하나 둘 나타난다. 천재들이다. 대학에서 기꺼이 받아주는 특혜도 있지만 천재들은 행(幸)과 불행(不幸)을 동시에 가지고 있다.

천재들의 불행! 천재들에게 운명적으로 가지고 있는 불행의 씨들을 유심히 가늠한다면 천재들의 불행은 비켜 갈수 있는 길은 얼마든지 있다. 비켜 갈 수 있는 무기, 바로 성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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