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정교분리’ 한계는 어디까지?

2014-06-18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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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방대법 상반된 판결

▶ 시의회서 개회기도는 “된다”, 공립학교 교회서 졸업식 “안돼”, 성인-미성년자 차이 때문인 듯

‘정교분리’ 한계는 어디까지?

엘름브룩 교회에서 열렸던 졸업식에서 학생이 대표연설을 하고 있다. <출처 브룩필드 나우>

정치와 종교의 분리는 어디까지가 적절한 한계인가. 과연 신앙 없는 사회는 가능한가. 조화와 상생의 길은 무엇인가.

청교도의 개신교 믿음을 바탕으로 세워진 미국이지만 디지털 시대에서 기독교의 입지는 급속히 좁아들고 있는 게 사실이다. 교회가 세상과 담을 쌓고 거룩한 영향력을 상실하면서 오히려 세속의 급류에 휘말리고 있는 형편이다.

연방 대법원은 16일 공립학교가 교회에서 졸업식을 진행하는 게 헌법 정신에 위배된다는 판결을 내렸다. 지난달 시의회에서 회의를 시작할 때 하는 기도가 정교분리의 원칙에 어긋나지 않는 ‘합헌’이라고 판결한 것과는 방향이 어긋나는 결정이다.


연방 대법원은 시카고 연방 항소법원이 내린 졸업식 교회 거행 위헌 판결에 대한 교육구 측의 상고를 기각하고 원고승소 판정을 내렸다. 밀워키 교외에 위치한 엘름브룩 교육구는 학교 강당이 낙후되고 냉방시설도 갖춰지지 않아 지난 2000년부터 산하 학교의 졸업식을 최신시설을 갖춘 엘름브룩 교회에서 열어 왔다.

이번 소송은 9명의 학생과 이들의 학부모가 이에 대해 소송을 제기하면서 시작돼 대법원에까지 올라갔다. 교육구 변호인단은 항소법원의 위헌판결이 지난달 대법원의 시의회 기도 합헌판정과 일치하지 않는다면서 대법원에 상고했었다.

위헌판정을 내린 대법관들은 이번 판결에 대해 코멘트를 거부했다. 하지만 대법원이 한 달 사이에 상반돼 보이는 판정을 내린데 대해 ‘성인과 미성년자의 차이’가 결정적인 심의사항이 된 것으로 알려졌다.

시의회 기도의 경우 참석자인 성인이 기도를 거부하고 회의장을 나갈 수 있도록 허용했지만 학생들은 교회에서 열리는 졸업식에서 선택의 여지가 없다는 점을 고려했다는 것이다.

결과적으로 교회는 커뮤니티와 이웃을 섬기는 역할을 금지 당했고 학생들은 무더위를 참고 낡은 학교 강당에서 졸업식을 갖게 됐다.

연방 대법원은 지난달 5일에는 “시의회에서 하는 개회기도는 행사의 한 순서로 미국의 오랜 전통이자 유산”이라며 “정교분리 원칙에 어긋나지 않는다”고 판결한 바 있다.

뉴욕주 맨체스터 근교의 작은 도시인 그리스 시의회는 11년 동안 월례회의를 시작할 때 지역 내 기독교 목사들이 기도를 해 왔다.


하지만 유대교인과 무신론자인 두 명의 주민이 이를 두고 시정부가 특정 종교를 지지할 수 없도록 한 수정헌법 1조(정교분리의 원칙)를 위반했다며 소송을 제기했다.

당시 앤소니 케네디 연방 대법관은 합헌 다수 의견에서 “시의원 회의 때 하는 기도는 미국 역사에서 오랫동안 이뤄진 기도들과 일맥상통하는 것”이라며 “미국을 구성하는 중요한 일부”라고 밝혔다.

지난 수년간 공공장소에 있는 십자가, 십계명, 아기예수 탄생 장면 등과 같은 기독교 조형물들이 정교분리 원칙에 위배된다며 이를 제거하려는 움직임이 곳곳에서 끊임없이 이어지고 있다.

그러나 사회적으로 신뢰가 추락하고 있는 교회는 적절한 대응과 해결방안 마련에 힘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유정원 종교전문기자> walkingwithj@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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