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그것을 왜 버렸나

2014-06-16 (월)
크게 작게
허병렬(교육가)

어린이들이 제각기 예능교실로 떠났다. 교실을 정리하면서 쓰레기를 버리려고 하다가 편지봉투 하나를 집어 들었다. “누가 떨어뜨렸을까?” 편지봉투의 이름을 보고 있는데 제임스의 목소리가 들렸다. “내가 버렸어요.” “왜?” “아빠는 한글을 못 읽어요.” 나는 뒤통수를 얻어맞는 느낌을 받았다. 그리고 제임스에게 미안함을 느꼈다. 제임스 정말 미안해. 이런 상황은 미처 생각을 못했거든. 아빠에게 그 내용을 알리는 방법을 찾았어야 하는데…….

근래 한국학교의 학생들은 다양하다. 한국인 2세, 부모 중의 한쪽만이 한국인, 입양된 한국인, 한국에 흥미를 가지는 부모의 자녀...등 가지각색의 색깔이다. 이에 따라 커리큘럼도 바뀌고, 학교 행사 등 그 내용이나 진행 방법에 세심하게 마음을 써야 한다. 그런데 오늘 제임스의 사정에는 미처 마음을 쓰지 못했다. 제임스의 생각이 옳다. 아무리 마음껏 만든 아버지날 카드인들 그것을 읽지 못하는 아빠에게는 아무 뜻이 없다. 그래서 쓰레기통에 버렸다. 그가 교실에 남아있던 이유는, 또 다른 프로그램에 참가하기 위하여 엄마를 기다리느라고 혼자 남아있었다.


“제임스, 걱정 안 해도 돼. 엄마가 그 내용을 아빠한테 알려줄게.” 교사의 설명을 들은 엄마는 제임스의 손가락을 만지작거리며 말하였다. 제임스는 고개를 끄덕이며 그 봉투를 냅색에 넣었다. 제임스의 카드에는 이렇게 써 있었다. “나, 아빠 사랑해요. 우리 아빠 넘버 원!”

필자가 맡고 있는 학교는 어린이와 성인의 커리큘럼이 따로 있다. 그 이유는 앞의 예가 말하는 것처럼 어린이뿐만 아니라 성인교육의 필요성을 느끼기 때문이다. 그 예로 외국학부모를 위한 한국어반의 필요성을 느꼈다. 문예반의 학부모들은 생각을 기록하기 위해서, 합창반은 한국의 아름다운 동요를 이 지역에서 생활화하기 위해서, 서예반은 묵향을 잊지 않기 위해서, 무용반은 한국적인 몸놀리기로 몸매를 가꾸기 위해서...등등의 이유가 있다. 더 중요한 것은 이런 분위기가 어린이들의 성장에 도움이 됨을 믿는 까닭이다.

우리들의 생활에는 곧잘 돌발사고가 생기기 마련이다. 어느 날 새벽, 학교에서 연락이 왔다. 학교의 전기가 나가서 부득이 학교를 닫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 때부터 전화에 불이 났다. 우선 교사 전원에게 사정을 알리고, 그들은 담임한 학생 전원에게 연락을 하였다. 한 사람도 빠짐없이 연락이 되었다는 보고도 받았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사람이 하는 일에는 빈틈이 있는 것이다. 직접 학교에 가서 현황을 파악하기 전에는 마음을 놓을 수 없다.

마침 임차해서 사용하는 학교 교장도 등교하여서 사정을 파악하고 있었다. “혹시 사정을 모르고 등교하는 학생이 있을까봐 나왔지요.” “연락이 잘 되어서 한명도 등교를 안 했으니 다행입니다.” 서로 이야기를 하고 떠나려는데 이게 웬일인가! 두 학생이 나타났다. 어린 학생이 아니고, 학부모반 학생 두 분이다. 이분들은 학생 명단에서 빠져있었기 때문에 전연 연락을 받지 못한 까닭이다. 어쩌나…….

이 두 분은 자매이고 자녀 3명과 4명은 본교 졸업생이다. 그들은 이미 대학을 졸업하고 사회에서 일하거나, 아직 대학생으로 있다. “그럼, 학부모반에 계신 지는 몇 년이 되셔요?” “20년이 넘지요” 자녀들은 학교를 졸업하였고, 그 부모들은 아직도 재학생 신분이다. 그 분들이 학부모반에서 계속 공부하는 이유는 알 수 없지만 사실이다. 학교 정전을 연락받지 못하고 등교한 단 두 분이었다.

학교는 사람들이 가장 지혜롭게 만든 걸출한 창조물이다. 학교는 형체가 있거나, 보이지 않거나에 관계없이 서로 배워야 더 좋은 생활을 할 수 있음을 알린다. 그래서 사람들은 좋은 환경을 찾고, 좋은 스승이나 멘토를 찾고, 좋은 친구를 찾고, 좋은 학습 방법을 찾고, 좋은 학습 자료나 도구 ... 등을 찾는다. 이처럼 자기 자신을 향상시키려는 각자와 사회의 의욕 때문에 인간의 역사가 건강하게 이어진다.

카테고리 최신기사

많이 본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