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고통과 사람

2014-06-14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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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명욱 <객원논설위원>

41년 전 군에 있을 때 일이다. 맹장수술을 위해 군 병원에 입원했다. 수술 후 회복실에서 하루 밤을 지냈다. 회복실에는 다른 수술 환자들도 있었다. 그 중에 어린 남자 아이도 있었다. 아마도 군인가족 중의 아이 같았다. 수술시 마취했던 마취효과가 다 풀린 뒤 수술 부위인 아랫배에선 통증과 함께 고통이 시작됐다.

끙끙대며 고통을 참아내는데 옆에 누워있던 아이는 더 심한 통증에 계속 아픔과 고통의 신음을 내며 울부짖다시피 했다. 그 아이의 고통소리와 아랫배의 통증에 뜬 눈으로 밤을 세웠나보다. 나중에 안 일이었지만 아이의 병명은 다리 내의 뼈에서 발생한 골수염이었다. 그 아이의 수술은 뼈 속을 갉아내는 것이었다.


칼로 뼈 속을 후벼 냈으니 그 고통을 어찌 말로 다하랴. 고통(苦痛)은 통증(pain)이다. 사전적 의미로는 실재적이며 잠재적인 손상 또는 피해와 악영향 등으로 서술될 수 있는 불쾌한 감각적이며 감정적인 경험을 말한다. 고통에는 육체적 고통과 불쾌감·우울함 등의 부정적 감정으로 괴롭다고 여기는 정신적 고통이 있다.
육체적 고통과 정신적 고통은 내용이 다를 수 있다. 병든 곳을 수술한 후 치유과정의 고통 같은 것은 희망의 고통이다. 허나 자신의 과실로 인한 주위의 따가운 시선과 따돌림 상태의 정신적 고통은 절망의 고통이다. 그래서 육신적 고통은 참아내는 사람들이 정신적 고통은 이기지 못해 자살을 최후의 수단으로 삼는다.

요즘 통증에 관한 책을 구입해 읽는 중이다. 한국의 한 한의사가 쓴 EFT(Emotional Freedom Techniques)에 관한 임상연구서다. EFT를 어떻게 번역해야 옳을까. ‘감성으로 해방되는 기술’? 책이름은 다. 저자는 증오의 감정이 통증을 불러오며 감정변화는 체질변화를 가져온단다.

저자는 “믿음은 모든 치료가 실패했을 때도 유일하게 의지할 수 있는 최상의 약이고 사실상 모든 치료의 근원”이라며 “부정적 생각과 감정이 병의 원인이 되며 우리 몸은 우리의 믿음 그대로 실현 된다”고 한다. 그러며 뫔(몸+마음)의학으로 요통, 만성복통, 복합부위통증증후군 등의 환자들을 고통으로부터 해결해 준다.
살을 자르듯 고통을 당해본 적이 있는가. 고통의 순간엔 저절로 이런 기도가 나온다. “조물주여, 고통 없이 데려가 주소서!” 무슨 망발인가, 하루라도 더 살아야지. 왜 목숨을 포기한단 말인가. 온 몸이 어름처럼 차가워지고 무더운 한 여름임에도 식은땀과 추위로 몸의 중심은 어디에도 없고 그저 하늘만 바라보게 한다.

태양이 지글거리며 타는 듯 뜨거운 여름. 음식 조심해야, 복통 피할 수 있다. 특히 냉장고속에 넣어둔 음식이라도 사용기간이 지난 음식물은 가차 없이 버려야 된다. 조금도 미련 갖지 말고 냉정하게 쓰레기통으로 보내야 된다. 식중독으로 통증을 스스로 불러들이는 것의 예방 차원이다. 왜, 사서 고통을 몸에서 키워야 하나.

가끔, 항암치료를 받는 암 환자들을 생각해 본다. 얼마나 고통스러울까. 그것도 치유확률이 저조한 병자들에겐 통증도 통증이지만 죽을 수 있다는 절망의 정신적 고통 또한 육체적 고통 못지않으리. 지인 중에 항암치료의 고통을 넘어 치유된 후 잘 살아가고 있는 사람이 있다. 그를 볼 때마다 진정한 존경심이 들곤 한다.

육신의 고통이던 마음의 고통이던, 고통 없이 살아가는 사람은 이 세상에 아무도 없다. 그러니 인간은 고통과 더불어 살아가는 존재다. 하지만 인간에겐 고통을 넘어설 수 있는 마음이 있음에야. 마음은 우주의 기(氣)를 받아들이는 창구요, 우주의 기는 생사(生死) 가름의 고통마저도 넘게 해주는 어머니 같은 존재다.

뼈를 깎아낸 아이의 고통스런 절규! 고통도 아닌 맹장수술의 통증. 치유의 통증은 희망의 고통이다. 부정적 생각이 병과 고통의 원인이다. 여름 식중독에 조심해야 한다. 항암의 고통을 견디어 낸 사람, 존경스럽다. 노페인, 노게인(No Pain, No Gain)! 고통 없이는 얻는 것도 없다. 고통, 성숙을 향한 징검다리도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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