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가 방인숙의 서부 여행기 (7) 캘리코
2014-06-13 (금)
▶ 서부 영화 한 장면같은 황량함과 적막감만...
▶ 1881년 골드러시로 탄생 1907년 폐광
서부역사 흔적 재구성 민속 관광촌으로 거듭나
130만~200만 달러 어치 은 품고 있는 보배로운 산
6월 14일 토요일
오늘은 일정도 빠듯치 않고 집합시간도 늦어 모처럼 느긋하다. 커튼을 여니 눈이 부시게 푸르른 날이다. 서정주 선생은 이런 날엔 그리운 사람을 그리워하자고 했다. 지금 이 순간, 내 가슴에도 떠나간 모든 이들을 향한 그리움이 속수무책 가슴 가득 차오른다.
인제 보니 내가 묵은 호텔이 다리를 건너자마자 있는 앞쪽이고 방도 가장 앞이다. 나무도 없는 황토 오름을 한국인 노부부가 손을 꼭 잡고 새벽 산책중이다. 자연에 녹아들은 모습에 덩달아 내 마음도 따뜻해진다. 허긴 젊을 때의 열정이야 헤어드라이어고, 마음 맞고 편안한 노부부의 정은 은근한 구들장일 테니까.
안과 둘이 재차 강변산책로를 찾다가 시간만 허비했다. 산책로가 있던 호텔은 끝 쪽이었대서 그런가보다. 이 기회에 마른 황톳길등성이와 눈 맞춤하며 땅의 기나 듬뿍 받고 가는 건데, 잘못했다. 늘 숨 못 쉬는 포장도로만 걷다가, 산에나 가야 흙길을 걸어보는 처지에 말이다. 또 이왕이면 다리에도 가서 세 주를 동시에 발 도장 찍어보는 건대. 이래저래 아쉽다. 과거의 그리움에 매여 날려버린 시간이 후회막급이다. 육십 넘을 만큼 살아왔다면 사는 방법만큼은 전문가여야 할 텐데, 순발력과 슬기로움에선 여전히 점수미달의 도돌이표다. 혼자서 속으로 삼 세 번째 방문을 기약하며 버스에 올랐지만, 글쎄다.
광대한 사막들판에 뜬금없이 웬 논인가하고 깜짝 놀랐을 만치, 초록 풀들이 끝없이 덮여있다. 말과 젖소, 식용우의 고가사료 작물인 알팔파(Alfalfa)였다. 모하비사막이 보기보담 비옥해 스프링클러물만 먹고도 일 년에 6-7번이나 수확한다나.
길 폭이 점점 좁아진다 했더니 캘리포니아란다. 미국의 실크로드라 불리는 역사적인 도로인 66번으로 잠시 들어섰다. 존 스타인 백이 ‘분노는 포도처럼
’에서 ‘어머니의 길’이라 명명했던 길이다. 시카고에서 시작해 8개 주를 거쳐 캘리포니아 산타 모니카 바닷가에 이르는, 2448마일의 최초의 미동서 횡단도로다. 세계 바이크 족들에겐 숙원의 길이기도한데, 나는 버스로 달려본다. 옛길이라 굴곡과 높낮이가 심해 롤러코스터를 탄듯하지만, 파도타기 하는 느낌에 재미만 있다.
사막의 길가에 전차, 장갑차 같은 군수품들이 그냥 누드로 노출돼있다. 고물병기창이거나 폐군수품 야적장이라 방치된 줄 알았더니, 현재 아프가니스탄 등지에서 사용 중인 무기들이란다. 비가 안 오고 습기도 없는 탓에 절대 녹이 슬거나 부식염려가 없어서란다. 에드워드 공군기지에다, 미 해병 군수지원단과 공군들이 집중적으로 훈련받는 곳도 이 사막에 있다니, 모하비의 강점이 한 가지 더 추가다. 이쯤 되면 흰자위 아닌 노른자위사막이다.
차가 꼬불꼬불한 시골길로 들어섰다. 캘리코라는 폐광된 은광 촌으로 가는 길이다. 매장된 은으로 인해 거무튀튀한 산에, 헐리우드 사인마냥 크고 하얗게 Calico라는 사인이 눈에 확 띄게 부착돼있다.
가이드가 이런 벽지에도 한국인이 산다며 길가 아담한 집을 가리켰다. 장독대는 없지만, 화단에 핀 분꽃, 백일홍, 여러 꽃들의 하모니가 한눈에도 한국시골마당이다. 아! 그리고 태극기가 집주인의 망향을 담아 마당에서 휘날리고 있다. 아니, 한국인들은 언제나 어디서나 깨어있어야 한다며 힘차게 펄럭이고 있다. 생면부지의 집주인이지만, 먼 이국의 벽촌구석에서 태극기를 앞세운 자긍심, 조국애, 당당한 용기에 가슴이 짠해진다. 너무도 소중한 조국임에도, 때론 강 건너 불구경하듯 살고 있는 건 아닌지 성찰하게 된다. 모쪼록 집주인의 건강과 안위를 가만히 빌었다.
캘리코는 골드러시로 1881년에 타생했다가 1907년 폐광과 함께 사망신고 됐던 곳이다.
그런 죽은 마을이 미국서부역사의 흔적이라며 고스란히 재구성돼, 민속관광 촌으로 거듭난 곳이다. 주변을 둘러보니 이미지가 유령의 마을(Ghost town)이란 별명 그대로다. 황폐한 산등성이들이 삭막한 쥐색 빛의 모래로 덮인 산이다. 금방이라도 와르르 주저앉을 것처럼 보이지만, 130만 불-200만 불 어치의 은과, 비행기의 필수부품인 붕사를 900만 불상당 품고 있는 보배로운 산이다.
마을 입구로 들어섰다. 실제로 은을 캐던 그 시절의 광구와 건물은 물론 모든 생활상과 물품들이 그대로인 채, 마을사람들만 싹 증발한 상태다. 당시의 사진관, 우체국, 인쇄소, 이발관도 있다. 미스터리 판잣집이라 불리는 오두막집엔 겉벽을 도배한 마감재가 유리병바닥이다. 당시 건축방법의 하나였나? 여인숙이었는지 낡은 마차에 흙먼지 뒤집어 쓴 허름한 여행백이 반쯤 열린 채 실려 있다. 마구간엔 망가진 마차바퀴와 녹이 잔뜩 슨 농기구, 석유등잔등이 아직도 제자리를 지키고 있다.
그렇게 옛날에 존재하던 모든 것들이, 세월을 켜켜이 쌓은 채 동작정지 상태인 것이다. 얼핏, 발굴된 모든 유물들과 사람들이 화산재에 묻히던 순간의 정지된 모습 그대로였던, 폼페이 유적들과 대비된다. 잡화점이었던 상점에선 그때 생활소품과 수공예품들을 만들어 팔고 있다. 기다란 나무통에다 모래를 담고 물을 부어 납작한 양재기로 사금채취체험도 해보게 한다. 살롱이란 술집은 위에만 달린 두 쪽의 쪽문나무문까지 서부영화 그대로다. 아니 영화는 세트장이지만 여긴 진짜 원조니까 더 리얼하겠다.
산 아래는 트램 라이드라고 꼬마 석탄기차가 광물대신 관광객들을 싣고 달리고 있다. 마을의 중심엔 언덕길과 샛길까지 온통 흙바닥 일색이다. 세상에서 가장 좋고 구수한 게 흙냄새라지만, 120년 전에 형성된 빈 마을이다 보니, 죽음의 메마른 냄새만 풍긴다. 그런데다 초록빛 나무는 눈을 씻고 봐도 볼 수 없다. 서부영화마다 엑스트라로 찬조 출연하는 누런 텀불 위드만 바람에 쓸려 다녀, 황량함만 배가시킨다.
날씨마저 뜨겁고 건조한데다 햇살은 쨍쨍 직통으로 내리쬐니, 딱 영화 ‘황야의 무법자 ’다. 저 길 위에서 카우보이모자를 빼뚜름히 쓴 클린트 이스트우드가 양미간을 잔뜩 찡그린 채 말을 타고 내려온다. 말의 발자국마다 희뿌연 흙먼지가 뽀얗게 피어남과 동시, 후란시스 레이의 휘파람 같은 주제곡이 쫘악 깔린다. 나도 그 장면 속으로 들어가 서서, 빈 황야의 마을만 자꾸 뒤돌아본다.
생활문화와 관습의 차이로, 우리 민속촌에서처럼 옛 시절의 향수에 젖게끔 안 된다. 그저 타 문화인 서부영화의 고향이라, 고작 이렇게 서부영상에나 빠져볼 밖에 없다. 날 저물면 관광객들과 종사원들은 썰물처럼 다 철수할 것이다. 그러면 산 밑 외진 곳 텅 빈 유령의 마을은, 도깨비들 차지가 돼서 ‘금 나와라 뚝딱’하려나.
이제 북쪽으로 10마일 떨어진 바스토우 행이다. 드넓은 황무지에 이따금 하얗고 동그란 막대기 같은 게 꽂혀있다. ‘동부에선 못 보던 건데 뭔가?’ 했더니 지진계란다. 저 기구가 생소하단 얘기는, 뉴욕이 지진에서 만큼은 비교적 자유롭다는 증거라, 선택받은 느낌이다.
종착역인 LA한인 타운으로 복귀해 ‘마지막 만찬’을 했다. 완전 여행 끝인 게 피부로 느껴져 아쉽기 한량없다. 청마 유치환선생의 서한집제목인 ‘즐거웠으므로 행복하였네라’의 절구를 빌려 가만히 한 소절을 입력해본다. ‘여행을 했으므로 행복하였네라’라고.
공항에 도착하니 기어코 경이 또 나와 있다가 반겨준다. 선물까지 잔뜩 갖고 온데다 비행기 안에서 먹으라고 따끈따끈한 호두과자까지 챙겨왔다. 이 사려 깊은 친구는 거의 50년 가까이 돼옴에도, 나의 기호품을 잊지 않고 있었나보다.
최인호 선생이 단언했다. “나이가 들수록 남성들의 우정보다 여성들의 우정이 더 진실하다고.” 절대 동감이다. 연거푸 친구의 소중한 밤 시간을 빼앗아 친구와 가족들한테 미안하면서도, 모처럼 마음이 정겨움으로 푸근하다. 법정스님께서 남긴 “인간의 진정한 관계는 갑자기 만들어 지지 않고 세월을 통해 다져 진다”고 통찰했던 말, 역시 진리다.
작별인사 후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오르면서, 밤늦은 귀가 길에 총총걸음으로 멀어지는 친구의 뒷모습을 보는 순간, 또 눈가가 젖어온다. 라프 왈도 에머슨(Ralph Waldo Emerson)의 <친구>란 시를 경에게 띄워 보낸다.
소리를 내며 타는 불처럼 따뜻하며/뜨거운 초콜릿 음료처럼 달콤하고/어린 아이의 포옹처럼 편안하다/진정한 친구의 가치만큼 귀중하고 소중한 것은 드물다//친구란 진실한 사람을 말한다./그 앞에서라면 무심코 혼잣말을 해도 괜찮은 그런 사람 말이다.
인제 밤 11시 30분에 출발한 비행기는 밤새도록 뉴욕을 향해 갈 것이다. 정이 머리에 대고 자라며 안겨준 공항베개를 베고, 이번 여행을 차근차근 돼 새겨본다. 여행지에서 보냈던 나날이 꿈속에서 경험한 세계처럼 벌써 아득하다. 누군가가 ‘여행의 진가는 첫사랑처럼 떠나버리고 한참 지난 뒤에야 알게 되는 거’라고도 했지만, 나는 이미 안다. 여행 내내, 매일 매일이 벼락같은 감동이었기에, 금방 그리워질 거라는 걸.
이번 여행길에서도 친구들의 배려를 많이 받았다. 여행기 쓸 때 사전 찾을 시간 아끼라며, 한글해설이 첨부된 그랜드캐년 사진책자를 건네준 안. 자이언캐년 사진책자와 참고하라며 각 캐년의 신문칼럼을 준 조. LA시내관광사진은 못 찍었다니까 사진을 전송해준 송. 또 음으로 양으로 관심을 기울여 준 주변의 모든 친구들께 고마움을 전한다. 귀찮게 질문만 많던 학생(?)임에도, 성실하게 답변해주신 진가이드님께도 감사인사 드리며....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