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비틀즈와 월드컵

2014-06-13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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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병임<논설위원>

지난달 28일 서울 잠실종합운동장 주경기장에서 예정됐던 영국 록 밴드 비틀즈의 ‘폴 매카트니 공연’이 폴의 바이러스성 염증으로 인한 건강악화로 전격 취소되었다. 1962년 비틀스의 첫 싱글이 나온 이래 반세기만에 성사된 한국 최초의 이벤트로 하루 휴가를 낸 직장인, 공연 날만 기다리던 중년부부, 서울행 버스를 대절한 지방 팬 등 한국민의 아쉬움이 무척 크다는 보도를 보았다.

오랜기간 뉴욕에 살면서 폴 매카트니의 맨하탄 리버사이드 처치, 브루클린 공연장, 타임스퀘어 가두공연 등의 소식을 심심찮게 접하면서 그리 비틀즈 노래에 연연하지 않았다. 그런데 이번에 한국 공연 무산에 실망하는 한국민들을 보면서 아, 이들은 그와 함께 크게 소리쳐 노래하며 절망을 딛고 일어나 희망을 나누고 싶었나 보다 느껴졌다.


4월에 일어난 세월호 참사에 놀라고 절망하고, 스러져간 어린 생명을 우두커니 지켜만 본 무기력함과 자책감, 원칙 없는 세상에 대한 울분과 반성, 이 모든 것을 슬픔을 당한 이웃과 함께 어깨동무하고 부둥켜안고 엉엉 울면서 한을 풀고 싶었던 거다.

비틀즈의 노래 ‘렛잇 비’, ‘헤이 주드’, ‘예스터 데이’, ‘이매진’ 등 주옥같은 명곡은 팝송을 잘 모르는 사람들의 귀에 익을 정도로 유명하다.
"내가 근심에 처했거나 암흑의 시간 속에 헤매고 있을 때, 상심했을 때 지혜의 말씀, Let it be, Let it be 그냥 그대로 둬요, 순리에 맡기자고요), “난 옛날이 그립습니다. (Yesterday.....oh, I believe in Yesterday)”, “헤이, 주드, 너무 상심하지 마, 너무 두려워하지 마 (Hey, Jude. don’t make it bad, Hey, Jude don’t be afraid...)
사람들은 렛잇비 전주곡이 나오면 바로 눈물 흘릴 준비를 했고 영국 리버풀 시대에 수줍은 미소의 더벅머리 미소년 모습에서 마르고 머리 허연 노인이 되어버린 폴 매카트니(71)를 보면서 다시 못올 청춘과 덧없는 젊음에 대해, 지난 날 추억의 노래를 함께 부르면서 전 국민적 슬픔을 녹여냈을 것이다..
그리고 마지막에는 “옐로우 섬머린, 옐로우 섬머린(yellow submarine, yellow submarine...)을 외치며 다시 환상과 꿈과 희망을 가졌을 것이다.
다른 사람의 아픔에 내 설움도 함께 녹여내고 싶었던 기회를 놓쳐버린 한국민들, 마찬가지로 낯설고 물선 이국땅에 이민 와 살면서 마음껏 소리쳐 울 기회도, 공간도 없는 미주한인들을 위한 장이 마련되었다. 12일 개막한 2014년 브라질 월드컵이다.

브라질 월드컵이 12일 개막전부터 7월 13일 결승전까지 한달간의 대장정에 들어가 전세계인을 열광시키고 있다. 한국은 다음 주 화요일인 17일 오후 6시 러시아와 첫 경기를 치른다. 22일 알제리, 26일 벨기에와의 경기도 예정되어 있다.

홍명보 감독이 이끄는 한국축구대표팀은 11일 베이스 캠프인 브라질 포스 두 이구아수의 숙소에 도착하여 브라질 교포들의 환영을 받았으며 공식 훈련에 들어갔다.
이번 브라질 월드컵은 참사의 슬픔을 극복하고 한국민은 물론 해외동포 모두가 마음을 다잡고 일어날 절호의 기회이다. 미주한인들은 이번 기회에 목청껏 소리 높여 한국의 전사들을 응원하면서 언어도도, 풍습도 서툰 나라에 뿌리 내리며 쌓인 이민의 설움을 해소시키자.

한ㆍ일 월드컵 4강 신화를 일궈낸 2002년 당시, 유니온 상가와 노던 블러바드 대로를 걸어가면서 밤낮으로 ‘대~한민국’, “오~필승 코리아”를 외치던 붉은 옷차림의 청소년들, 붉은 티셔츠에 붉은 두건 차림으로 거리로 나선 한인들, 우승 소식이 전해질 때마다 태극기와 성조기를 꽂은 채 클락션을 빵빵 울리며 뉴욕 거리를 질주하던 차들을 다시 보고 싶다. 행복했던 그날을 떠올리며 이번 2014년 월드컵 응원을 통해 뉴욕한인사회가 하나로 결집되고 세월호 참사로 인한 미주한인들의 상처가 치유되기 바란다.

한국대표팀의 이번 월드컵 공식 슬로건은 ‘즐겨라! 대한민국(Enjoy it, Reds)’이다. 하지만 우린 지금 다함께 있다는 것이 더 중요하다. “렛츠 고 코리아(Let’s go Korea)”, "다함께 힘내자!(Let’s cheer on together)“고 하늘을 향해 크게 소리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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