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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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가 방인숙의 서부 여행기 (6) 그랜드 캐년

2014-06-06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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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엄청난 대자연 풍모 앞에 하염없이 작아져

지구상에는 미 서부처럼 평원과 고원지대가 넓은 곳이 없단다. 내가 서있는 현 위치도 평지인 줄 알았더니, 실은 콜로라도고원의 높은 산이란다. 7천만 년 전에 시작된 해안지대지층의 융기현상에 의해 3000m이상 들어 올려졌단다. 그로인해 퇴적암이 계단모양으로 솟아 시루떡마냥 수평으로 차곡차곡 형성된 고원으로 된 거였고.

반짝이는 검정색과 약간 밝은 담 황록색으로 경사를 이룬 산들이, 저 아래 멀리 가물가물한 회녹색 평지에 닿아있다. 아득하게 바닥이 초록색으로 보이는 손바닥만한 곳은 인디안 호피족의 주거지란다. 그 앞으로 이런 자연걸작품탄생의 일등공신인 콜로라도 강이 보인다. 좀 전의 영화에선 공포의 대상이던 성난 황토급류의 강이, 꼭 한 가닥 실 인양 얌전히 누워있다. 도대체 이 캐년이 얼마나 넓고 깊다는 건지, 감이 영 안 잡힌다.

여하간 나는 그대 앞에만 서면 작아지는 게 아니라, 이런 엄청난 대자연의 풍모 앞에 서면 하염없이 쪼그라든다. 인간들의 자연에 대한 오만과 경거망동이 오싹 두려워진다. 서부의 자연보호에 앞장섰던, 시오도어 루스벨트 대통령이 남긴 유명한 말이 있다. “캐년을 그대로 가만 두라. 인간은 세월이 만들어놓은 작품을 훼손이나 시킬 뿐이다. 우리가 할 일은 잘 보존하여 후세사람들에게 넘겨주는 것이다.”


온 지구인들은 백번 지당한 그 경구를 확고히 유념 준수해야한다. 자연을 장엄한 고독 속에 남겨두고, 모든 걸 자연에게 맡겨야한다. 그 길만이 자연을 화나게 하지 않는 비책이자 재해를 줄이는 최 상책이다. 또한 근자에 부쩍 잦아진, 자연의 경고와 극명한 분노표출을 예방하는 가장 현명한 처사일 터. 우리나라는 이현령비현령의 핑계를 앞세워, 도시개발과 골프장 건설 등, 자연을 깎아 뭉개는 걸 능사로 안다. 절대로 자연을 가볍게 보지 말고, 좀 더 멀리 앞을 보고 신중해야 되지 않을까. 복원 불가인 강이나 산, 바위, 나무들이, 더 이상은 아파서 신음하지 않게 되기만, 바랄 뿐이다.

탐험대장 파웰이 “그랜드캐년은 한 번 봐선 모른다. 복잡한 미로를 고생해서 찾아봐야한다.”고 했단다. 그런데 나는 그 한 번도 편하게 고원위에서 잠시 내려다본 것뿐이다. 협곡은 근처에도 못 갔으니 ‘완전 수박 겉핥기’다. 더구나 바닥이 투명해, 하늘에서 절벽과 1200m 아래 강을 보는 느낌이라는 U자형의 말발굽유리전망대인 스카이워크를 못 가봤다. 후알라파이 인디안 족과 중국여행업자의 합작품이란 스카이워크가, 그랜드캐년의 중심에서 자그마치 250마일 떨어진, 웨스트 림의 후알라파이인디언 구역에 있는 걸 몰랐다.

그랜드캐년에 가면 당연히 접하려니 기대했다가, 버스 안에서 저쪽에 스카이워크가 있다는 가이드의 손가락만 봤다. 지리산 천왕봉에서 서울까지의 땅을 떠내 그랜드캐년에다 엎으면 딱 맞는다는 가이드의 말도 과장이려니 했는데, 충분히 타당성 있다. 통념이 깨지는 것은 여행의 신선함중의 하나지만, ‘못 가본 길이 아름답다’는데, 참 아쉽다.

무공해여행지인 3대 캐년이 안겨준 이미지와 메시지를 반추하면서, 나름대로 꽃에 대입해봤다. 그랜드캐년은 해바라기고 자이언은 홍초<칸나>, 브라이스는 글라디올러스랑 부합된다. 나의 선호도 점수는 자이언이 제일 높고.

네바다 주의 3대 도박도시가 라스베가스, 리도, 라플린이다. 카지노와 휴양도시인 라플린(Laughlin)으로 가는 내내, 한바탕 구름 위를 거닐다 온 듯 현실과 영 동떨어진 기분이다. 요 며칠 정점에 달했던 놀라운 시각적경험이, 현실적인 생각의 흐름을 멈출 만큼 강렬해서겠다. 그 옛날, 극장에서 가슴 저린 애절한 영화를 관람한 후면, 여진에 휩싸여 혼자 길거리를 배회하곤 했던, 내 ‘젊은 날의 초상’처럼 말이다. 확실하게 인지한 건, 여태껏 어디서든 근사한 협곡만 보면, 그랜드캐년 같겠다고 표현했던 내말과 글들이 다 거짓말이었다는 거다. 모르는 건 죄가 아니라지만, 나로선 상당히 찔리는 부분이다.

라플린은 서울서 대구까지의 거리라는 콜로라도 강을 끼고 있다. 흔히들 신은 그랜드캐년을 만들었지만 살고 있는 곳은 세도나 라고 한다. 라플린은 10여 년 전, LA의 경과 서울서온 영과 함께 세도나 가는 길에 하루 묵었었다. 그때 우린 밤에 강가를 걸으며 정답던 여고시절로 돌아가 까르르 웃음방울을 날렸었다. 야자나무 길의 그 강변산책로를 떠올리면 늘 그리움이 물이랑처럼 번지곤 하던 이유였다.

버스는 주경계선이라는 다리를 건넜다. 다리에 가로등이 3개인데, 첫 번째는 네바다 주 소속이고 두 번째는 캘리포니아 주의 경계선, 세 번째는 애리조나 주의 것이란다. 예전에 묵었던 호텔이 아닌지 주변이 낯설다. 엘리베이터 안엔 타고내리는 가족단위의 사람들로 꽉 차는데 전부 물놀이차림이다. 예전과 달리 가족휴양도시로 자리바꿈했나? 식당가는 길은 변함없이 슬롯머신들로 꽉 찼는데.

저녁식사 후, 고대했던 강변산책로를 못 찾아, 택시보트를 타는 일행에 합류했다. 굉장히 습하고 더운데다 ‘무진기행’이 떠올려지는 강안개세상이다. 고맙게도 오랜만에 얼굴에 와 닿는 강바람 결이 제법 청신하고 힘이 있다. 그물에도 안 걸리는 바람만은 강도 안개도 통행금지를 못 시킨다. 강 한복판에서 바라보는 불야성의 카지노호텔들이, 속의 진면목이야 어떻든 그지없이 아름다울 뿐이다. 어차피 세상사가 롱 샷으로 보면 희극이고, 클로즈업으로 보면 비극이라니까.


한눈에 펼쳐진 휘황한 네온의 불빛야경이 살며시 미적정서를 건드린다. 밤에 세느강에서 유람선 탔던 순간으로 되돌아가게 된다. 황금빛조명으로 빛나던 에펠탑을 배경으로, 강 양쪽엔 수백 년의 흔적이 고스란히 고여 있던 중세의 유적 같은 기념비적 건물들. 촉촉이 세느강을 적셔주던 빗방울이 뺨에 와 닿았었지. 낭만을 유도했던 기억들이 추억의 옷을 입고 가슴을 살살 흔든다. 법정스님이 주지했던 ‘순간순간에 감사하고 누릴 줄 알아야 한다.’던 말대로, 지금 이 순간은, 모든 것 다 잊고, 마음껏 로맨틱한 감상에 젖는 호사를 누려본다.

강 건너는 옹달샘을 뜻하는 인디안 말에서 기원한 애리조나 주인데, 한 점 불빛도 없다. 흐릿한 그믐달빛 사이로 숲과 나무들의 자태만 어스레 드러날 뿐이다. 그런 칠흑의 공간에 밤하늘은 더욱 새카맣고 왕별들은 어찌나 명멸하며 쏟아져 내리는지, 적요와 낭만 그 자체다. 딱 고흐의 그림 ‘별이 쏟아지는 밤에’의 모델이다. 고적한 시골 강변의 정취에 끝 간 데 없이 마음이 끌려 선가. 저런 강촌에 살고파진다. 강렬할 만큼.

정일근 시인의 <강촌에 살자>의 시구가 마음을 더 강촌으로 이끈다.
...삶이 강이라면/ 나는 그 곁 키 큰 미루나무되리/미루나무 아니면 이파리 흔들고 가는 바람/바람 아니면 떠있는 뭉게구름되리/강물 같은 사람아/우리 이대로 멈추어 서서 여기 살자/강촌에 살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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