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상현달 아침

2014-06-05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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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살아 가면서

▶ 강신용

조카 덕분에 삼형제가 모였다. 조카의 결혼식장에서 오랜만에 사돈네 식구들도 만났다. 신랑 손님보다 장로님의 교회 식구들이 식장이나 커다란 식당을 가득 메우고 있었다. 그동안 못 다한 이야기꽃은 피었다.

미국 이민생활도 한 세대가 지나갔다. 미국에서 태어난 형님의 큰 아들이 결혼을 했다. 형님은 한 직장에서 30년만에 은퇴했고 같은 교회에 30년을 다닌 장로이다. 수천명의 교인에게 봉사하며 한 세대의 흐름을 지켜봤다. 때마침 캐나다의 딸네 집에 계신 큰 형님 내외분도 미국에 처음 오셔서 결혼식에 강가네 어른으로 참석하셨다.

건강한 치아는 오복 중에 하나라고 한다. 큰 형님은 70대 노년이다. 몇년 전에 무심결에 보았던 형님의 식사하는 모습은 무척 건강해 보였다. 질긴 닭튀김을 잡수시는 형님의 치아가 유난히 건강해 보인다.


어머니는 50대에 틀니를 하셨다. 시골생활은 감자고개를 넘으면 무더운 여름이고 겨우 추수가 끝나면 길고긴 겨울이다. 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 막내는 네 살이었다. 막내 위로 철부지 아들 넷을 키우느라 제대로 먹기를 했겠나 치료를 변변히 받았겠나. 어머니는 치아 복이 없는 분이셨다. 미국에 사는 동안 입에 넣으면 술술 녹아나는 음식을 대접하는 것이 내게는 큰 효도이고 행복이었다.

정한수 떠놓고 비는 어머니의 모습이 떠오른다. 대학시험이 얼마 남지 않은 겨울 아침에 어머니의 기도소리가 들린다. 네 살배기 아들이 자라서 서울대학교 시험을 본단다. 긴긴 세월 혼자서 자식 뒷바라지로 세월을 보낸 어머니의 모습이 정한수 앞에 보인다. 달빛 아래 두 손을 모아 지아비께 부탁하는 지도 모르겠다. 내 아들 합격시켜 달라고.

상현달이 지켜보는 아침에 테니스를 치는 것으로 나의 하루는 시작한다. 바쁘게 살다보면 하늘을 쳐다보는 것도 드물다. 테니스를 치며 우연히 바라본 하늘에 하얀 반달이 걸려 있다. 가는 길에 우리를 기다리다 하얗게 머리가 쉬었나 아침에 보는 반달이 곱게 걸렸다.

하얀 김이 오르는 아침상이 간결하다. 어머니가 상머리에 부엌 차림으로 앉아 있다. 3찬 1즙이다. 된장찌개에 김치, 장아찌 그리고 생선튀김이다. 어머니의 정성은 가난도 덮고 아픔도 덮는 편안한 가슴을 가지고 있었다. 된장찌개에 쓱쓱 밥을 비벼먹는 씩씩한 아들을 보고 고마워서도 안타까워서도 속으로 많이 우셨을 것이다. 어머니의 아침상이 지금도 그립다.

상현달 뒤로 어머니가 보인다. 어머니가 돌아가신지 20년이 가깝다. 고달픈 이민생활 속에서 매년 한국에 다녀온 것은 어머니가 보고 싶어서였다. 어머니 장례 후 10여년간 보지 못 했던 큰 형님이 70대 노인이 되어 미국에 오셨다. 아버지 잃고 할머니가 되어 멀리 멀리 구름나라 지나 하늘나라에 계신 어머니가 상현달 쪽배를 타고 오셨나 보다.

아침잠이 줄어든다. 먹는 것도 줄어든다. 이른 아침 앞마당 꽃나무에게 묻는다. 덥지? 배고프지? 그들이 사랑스럽다. 그리고 정성스레 물을 준다. 어머니가 내게 그랬던 것처럼 사랑을 나눠준다. 아침 하늘에 상현달이 어머니 미소 같아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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