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초록색 잔치 한마당

2014-06-02 (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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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병렬(교육가)

“누가 제일 잘 했어요?” 참가 학생들은 서로 얼굴만 본다. “그럼, 어느 학교가 제일 잘 했어요?” 또다시 묻자 장내가 웅성거린다. “아깝네요. 진작 대답하였더라면 상을 받았을 텐데... 내 생각으로는 다 제일 잘했어요.” 도대체 이 말이 무슨 뜻인지 생각하는 모양, 장내가 조용하다. ‘다 제일 잘했다’는 말도 있느냐는 표정들이다.

세계 인구 증가율을 보면 남녀의 출생자 수가 비슷하게 나온다더니, 매년 ‘어린이 예술제’의 출연 종목이 자연스럽게 좋은 비율을 보인다. 제28회 어린이 예술제의 종목도 연극 4, 무용 3, 풍물놀이 5, 합창 1의 다채로움을 보였다. 첫째, 이런 상황에서 종목별을 초월한 전체 우수상을 준다는 것은 무리다. 둘째, 넓게 퍼져있는 지역의 한국학교들이 모인 모처럼의 자리이다.


우리는 무엇보다도 서로의 우정을 쌓는 것이 바람직하다. 그래서 한 자리에 모여 재능 잔치를 하는 것이 아닌가. 셋째, 학생들의 연령층은 가능한 넓은 세상에서 이것저것 맛보고, 만져보고, 해보고, 느껴보면서 각자의 적성에 맞는 것을 찾아야 하는 좋은 시기이다. 또 이 시기에 상을 받는 것이 반드시 좋은 영향을 주는 것도 아니다. 넷째, 상이 없는 모임도 즐기는 체험을 쌓기 바란다. 어떠면 이런 체험이 인성교육의 좋은 바탕이 될 지도 모른다. 어린이 예술제에 출연하면 다 똑같이 우수상 트로피를 받는다.

어린이 예술제의 창립 정신이 바로 이것이다. 다 같이 모여서 각자나 각 학교의 재능을 자랑하고, 서로 배우면서 넓게 친구를 사귀자는 것이다. 그동안 오랜 세월을 쌓아 올리면서 첫 단계의 목적을 달성하였다. 그러나 변화는 영원한 것이다. 앞으로는 어린이 예술제 참가교들이 서로 엉기는 작용을 기대한다. 지금까지는 각 학교에서 한 종목씩 참가하여 하나의 큰 예술제를 이루었다. 이는 마치 일품요리 시식회와 같다.

다음 기회를 위해 새로운 종목 하나를 생각해 본다. 참가자가 다함께 손잡고 노래 부르면서 빙빙 도는 맴돌이를 하면 어떨까. 지금까지는 각 학교에서 제각기 연습한 것만 보여 주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같은 노래를 제각기 연습하였다가, 다른 학교 친구들과 손잡고 빙빙 돌면서 함께 그 노래를 부르는 것이다. 서로 잡은 손은 따뜻하고, 노래 소리가 합쳐지면서 동그라미를 만든다면, 얼마나 즐거울까. 이렇게 서로의 우정이 싹트는 것이 아닌가.

‘연한 초록, 진한 초록 온 세상 가득 초록 잔치.초록 공기 마시고 초록이 된다.’ 이것이 언제부터인지 필자가 초여름부터 흥얼거리는 말이 되어버렸다. 어린이들이 우리의 희망이듯, 초록은 희망을 주며, 자연스럽게 어린이들을 상징하게 된다. 이 예술제에 모인 어린이들이 보여주는 연하고 진한 초록색은 다 모여서 초록 잔치를 이루고 희망적인 미래를 상징한다.

또 다른 제안은 참가교의 숫자와 관객의 수효를 늘리는 일이다. 더 많은 사람이 참가하거나 구경하는 것이 어린이 예술제의 목적을 달성하는 길이다. 참가자나 구경한 사람들의 감상문과 그림을 모집하고 이를 감상할 수 있도록 작은 책자를 내거나 전시회를 여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생각은 생각을 낳는다. 더 다양하고, 풍부한 모임으로 키울 수 있는 길은 얼마든지 있다.

또 실천 방법은 애로가 많겠지만, 두.서너 학교가 한 종목을 구성하는 일도 가능하지 않을까. 우리는 학교가 대항하여 상품을 다투는 것이 아니고, 어떤 방법으로 서로 힘을 합하면, 좋은 성과를 낼 수 있는 지 그 방법을 연구하고 있다. 학생들이 넓게 친구를 사귈 수 있도록 돕는 것도 빠뜨릴 수 없는 교육 목표이다. 우리는 사람이고 싶고, 친구는 재산이 아닌가.

오직 어린이 예술제만 더 재미있게, 더 풍부하게, 더 효과적으로 창의력을 발휘할 수 있는 것인가? 아니다. 우리가 영위하는 모든 일은 더 마음을 쓸수록 더 많은 성과를 올릴 수 있다. 즉 연구심이 많고 적음이, 일의 성과와 정비례한다. 그렇다면 ‘초록색 잔치’는 언제나, 어디서나 펼 수 있는 특색이 있다. 어린이 예술제도 미래로 이어지는 초록색 잔치 한마당에 틀림이 없다. 그리고 다른 것들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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