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과거로의 여행

2014-05-30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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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병임(논설위원)

요즘은 책이나 드라마, 영화를 보려고 해도 SNS를 모르면 이해가 잘 되지 않는다. 블로그, 페이스북, 인터넷 통신을 통해 개인의 프라이버시는 점점 노출되고 있고 디지털 시대에 발달한 컴퓨터 기술을 소재로 한 과거로의 여행도 모든 장르에 자주 등장한다.

과거로 돌아가 미래를 바꿔버리는 소설로 최근 읽은 것은 프랑스 작가 기욤 뮈소의 장편 ‘내일’이다. 교통사고로 사랑하는 아내를 잃고 네 살반 된 딸을 키우며 살아가는 하버드대 철학교수 매튜는 살 희망이 없다. 우연히 벼룩시장에서 중고 노트북 한 대를 구입해보니 하드 디스크에 사진과 아이디가 있어 이메일을 보낸다.

뉴욕에서 와인감정사인 엠마와 채팅을 하게 되고 서로 만나자고 약속한 날 둘은 서로 바람을 맞는다. 매튜는 2011년, 엠마는 2010년에 살고 있었기 때문, 매튜는 1년 전 아내가 사고 나기 전으로 돌아가 아내를 살리고 싶다. 그래서 엠마한테 자신과 가족을 살펴보라고 부탁한다.
그러자 아내 케이트가 자신의 심장을 애인 닉 피치에게 이식하고자 의도적으로 접근하여 결혼했고 살인청부업자를 고용한 것을 알게 된다. 매튜는 게임 왕 닉피치와 같은 희귀한 혈액형 헬싱키 그룹이었던 것, 이에 엠마는 사고 현장에 도착하여 위험에 처한 매튜를 구하고 케이트와 닉피치는 사망한다. 과거로 돌아가 현재를 바꿔 버린 것이다.


과거를 보는 거울도 있다. 영국 작가 조앤. K. 롤링의 소설 ‘해리 포터’ 제1편에 나온 ‘소망의 거울’이다. 어둠의 마법사 볼드모트의 습격으로 부모가 사망하고 한 살 된 아기 해리만 살아남았다. 이모와 이모부의 구박덩어리로 계단 밑 벽장에서 자라던 해리는 11세부터 17세까지 호그와트 마법학교에서 온갖 경험과 모험을 하는데 늘 엄마아빠의 얼굴이 어찌 생겼는지 궁금하다.

이 소설에는 소망의 거울, 칼, 그림, 깃펜, 날아다니는 물건, 마법 테이프, 망토, 불의 잔, 빗자루, 요술지팡이, 퀴디치의 공, 호그와트의 비밀지도 등 다양한 마법 물건이 나온다. 이 중 해리는 소망의 거울 속에서 자신을 슬프게 바라보는 엄마, 아빠의 모습을 보게 된다.

또 과거로 돌아가 미래를 바꾸는 이야기로 2013년 방영되었던 ‘나인-아홉 번의 시간여행’이라는 한국 드라마가 있다. 보도국 기자인 선우(이진욱 분)가 네팔 안나푸르나 산정에서 죽은 형의 손에 쥐어져 있던 향을 발견한 뒤 다시 9개의 향을 찾게 된다. 하나의 향이 타는 30분 동안 향을 피운 장소와 동일한 장소인 20년 전으로 돌아가는 비밀도 알게 된다.
향을 하나씩 피워서 아버지의 사망 원인을 알게 되고 죽은 형을 살려내 원하는 삶을 살게 해주지만 그로 인해 연인이었던 민영은 조카로 바뀌게 된다. 과거를 바꿀수록 자신은 불행해져 가는 것이다.
미래를 관장하는 신의 영역을 침범한 탓에 그는 막바지에 과거 속에 갇힌 채 탈출을 못하고 신부가 된 민영은 실종된 신랑을 기다리는데 탄탄한 스토리와 기막힌 반전이 한순간도 긴장을 놓치지 않게 만들었었다.

과학이 발달할수록 사람들의 상상력은 타임머신을 타고 무차원대로 오가고 있다. 탁월한 인조 지능이 인간과 갈등하고 사람의 뇌를 이식한 수퍼 컴퓨터와 교류하는 등 미래로의 여행 이야기도 이미 많이 나왔다.

벌써 우리는 기계와 많은 이야기를 주고받고 있다. 목적지를 말하면 즉각 대답하는 스마트폰, 가는 길을 가르쳐주는 네비게이터, “맛있는 잡곡밥을 시작합니다” 하고 말하는 전기밥솥, 처음엔 낯설더니 일상화 된 것을 보면 인공지능 컴퓨터와 같이 살 날도 머지않은 것 같다.

하지만 아무리 과학이 발달해도 사람은 끊임없이 인간의 본성을 찾으려 들고 마음 한구석에는 아날로그 시대의 그리움이 남을 것이다. 요즘 과거로 돌아가는 이야기가 많다보니 지나간 날들에 미련은 없지만 꼭 한번 30년 전 과거로 돌아가고 싶다.

소망의 거울이나 특별한 향 하나를 얻게 된다면 늘 조용조용, 말없이 세상을 사셨던 엄마 앞에서 온갖 수다와 재롱을 다 떨어 한번 크게 하하하 웃으시는 모습을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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