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진정한 주인의식

2014-05-28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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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주영(주필)

1775년 3월 23일 버지아니주 리치먼드 세인트존 교회에서 열린 식민자치회의에서 미국은 대영제국으로부터 독립을 해야 한다고 외치던 사람이 있었다. “자유가 아니면 죽음을 달라(give me liberty or give me death)”고 강변하던 당시 미국 독립혁명의 핵심 지도자였던 패트릭 헨리다. 그는 신생공화국의 독립을 위해서라면 영국과의 무력 전쟁이라도 감수해야 한다고 부르짖었다.

약 1만 에이커의 농장과 노예 수 십 명을 거느린 대지주였던 그는 자신의 이권과 자유에는 관대했지만 저항하는 원주민들에게는 가혹한 탄압을 한 것으로 전해진다.
200년이 지난 지금 그의 이기주의는 개개인의 자유와 선택을 무엇보다 소중히 삼는 사상 초유의 강대국인 미국을 낳는 근원이 되었다. 대지주건 아니건 모든 이들이 자신들의 종교적인 신념, 그리고 생활양식의 자유를 위해 총기를 들었다. 이것이 바로 지금 미국인들의 마음속 DNA의 핵심 원형일 것이다.


같은 시절, 한반도 이씨 조선에서는 백성들이 자신의 소작물을 한양의 임금과 탐관오리들에게 바치지 않으면 안 되는 삶을 살았다. 그들도 자유를 달라고 부르짖고 싶었겠지만, 감히 나라님에 저항한다는 생각은 꿈도 꾸지 못했다. 임금은 백성의 생명과 자유를 얼마든지 박탈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조선시대와 일제강점기를 거쳐 반백년이 지난 지금, 신생 공화국 대한민국이라는 운명공동체는 과연 어떤 DNA를 지니고 있을까?

승객 300명이나 죽은 여객선 세월호의 소유주 피의자 유병언과 일가의 잠적 행보를 보며 생각해 보게 된다. 세월호 침몰 사고야말로 각기 다른 한국인의 DNA를 단적으로 보여주고 있는 것은 아닐까.

승객 수 백 명의 절대적인 생명 가치에는 둔감하고 오로지 자신들의 주인인 회사 경영진과 소유주 유병언과의 전화통화에만 골몰하고 있었을 선장과 선원들. 사고 후 이들의 대화는 아마 보험처리나 물질적인 손해를 최소화하기 위한 것이 중심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선장과 선원들은 하늘과 같은 주인님의 최종결정만을 기다리고 있었으리라.

각 구조 단계에서는 또 얼마나 많은 주인님들의 무책임한 행동과 선택이 있었을까. 이 외에도 피의자인 주인님을 끝까지 보호하겠다고 나서는 구원파 신도들. 한국인들의 이런 모습을 보면서 한인을 포함, 전 세계인들은 대한민국의 사회적인 DNA에 대해 깊은 회의에 빠졌을 것이다.

사고 후 모두가 주인의식을 가지고 대응했더라면 세계가 깜짝 놀랄 만한 한국의 이미지를 남길 수 있었을 텐데... 고작 엉덩이를 흔드는 ‘강남스타일’이나 온 국민이 붉은 악마처럼 변신해서 광란에 휩싸이는 월드컵 응원전, 이것이 바로 오매불망 고국의 발전과 안녕을 염원하는 미주한인들이 반색할 대한민국의 DNA인가?

지난 2009년, 뉴욕에서는 허드슨 강의 기적이 있었다. 한겨울 추위에 승객 150명을 태운 여객기 US에어웨이가 라과디아 공항을 이륙한 후 허드슨 강에 비상 착륙하여 전원 구조된 사건이다. 엔진 속에 새들이 들어가 운항불능 상태가 되어 다시 귀항하라는 관제탑의 긴급지시와 달리 기장이 맨하탄 빌딩 숲을 과감하게 빠져나와 이뤄낸 결과다. 용기 있는 기장의 주인의식 덕분이었다.

세월호 침몰사건을 보는 미주한인들은 착잡함과 함께 이 두 사건의 이미지가 오버랩 됐을 것이다. 고국의 60-70년대 ‘우리도 할 수 있다’라는 강한 통치자 밑에서 보릿고개를 자력으로 극복한 주인의식 첫 세대의 보람과 자긍심이 있었다. 미국으로 이주해서는 불굴의 의지로 자신들의 운명을 개척해온 200년 미국인들의 DNA와 동화돼 살아 온 자부심이 있다.

이런 우리의 주인의식이 세계 12위 경제 강국이 된 대한민국에게는 먼 나라 관념이 되어 버린 것 같아 씁쓸하다. 진정한 자유란 ‘내가 속한 커뮤니티는 나를 희생해서라도 내가 구한다’는 주인의식으로부터 나온다는 사실을 미국역사는 생생하게 보여주고 있다.
juyoung@korea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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