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시간은 인간을 다스린다

2014-05-24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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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성구(목회학 석사)

`눈썹이 휘날리도록 뛰어야 하고 부동자세일 때는 눈알이 굴러가는 소리가 나도 안 된다.’ 이는 공수병들이 목숨을 걸고 거치는 과정으로 마치 지옥훈련과 같다. 생명줄을 비행기에 걸고 뛰어내릴 때 창공을 나는 그 기분은 진짜사나이라 불리는 공수병이 아니고서는 느낄 수 없는 기쁨이고 환희이다. 그런데 긴장한 나머지 생명줄을 비행기에 걸지 않고 뛰어내린 훈련병이 있었다.

당시 이것을 보던 조교가 즉시 뛰어내려 훈련병의 낙하산은 펴주고 자기 것은 시간이 없어 펴지 못하고 죽고 말았다. 그가 바로 한강변에 서있는 저 유명한 동상의 주인공 강재구 소위이다. 그의 희생적인 구조행위는 한국 군인역사에 길이 남을 상찬(높이 칭찬함)을 기록했다.


그러나 얼마 전 한국의 세월호 선장은 충분한 시간이 있었는데도 자기 목숨만 살려고, 그것도 속옷 차림으로 제일 먼저 뛰어내렸다. 이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선장과 선원들은 아무 원칙도 없이 조각배에 몸을 싣고 하루살이 몇 마리 고기에 만족하는 사공 없는 뱃사람에 불과했다. 강재구 소위와 선장의 행동은 하늘과 땅 차이이다.

눈앞에 자식의 생사를 지켜보고만 있어야 하는 천 갈래 만 갈래로 찢어진 저 아픈 가슴들, 온 국민이 슬픔의 눈물을 함께 나누어도 끝없이 멈출 줄 모르는 실종자 가족들의 눈물. 이제는 무너질 가슴조차 없는 유가족들, 속수무책으로 생사가 엇갈리는 시간을 지켜보는 가족들. 분하고 원통한 마음을, 어느 누가 위로해 줄 수 있을까.

무능한 국가의 지도자들, 국가가 국민을 외면해도 안 되고 국민이 국가를 외면해선 안 된다면 조속한 시일 내에 국가는 국민의 아픔을 적극 나서서 치료해야 한다. 이제 유가족들은 아픔에 계속 젖어있는 것보다 지난날 자식들과 함께 공유했던 날들을 돌아보며 감사하는 마음으로 아픈 가슴을 달래야 하겠다. 자식들과 함께 했던 시간들을 기쁨으로 승화해야 한다.

운명은 태어나는 순서도 지키지 않는다고 했으며 죽음에는 확실한 법칙이 없다고 한다. 온 국민의 위안이 큰 치료가 되고 유가족 모두를 돌보아야 할 때다. 몇 초의 시간이 없어 죽어갔던 자랑스러운 강재구 소위. 시간이 많았는데도 혼자 살아 나오기에 바빴던 비굴한 세월호 선장. 일촉즉발의 가장 위급한 순간을 놓쳐버려 300명이나 되는 귀중한 목숨을 죽음으로 내몬 것을 보면 우리는 아까운 시간을 너무 물 쓰듯 한 것은 아닌가 돌아볼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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