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위험한 상실감’

2014-05-21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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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주영(주필)

로마의 장군이자 정치가였던 카이사르가 어느 날 배를 타고 바다를 건널 때 일화이다. 갑자기 심한 폭풍우가 몰아쳐 배가 난파하기 직전이었다. 모두가 겁에 질려 ‘이게 마지막이구나’ 하고 있고 평생 배와 함께 지냈던 사공마저 겁에 질려 하나님을 찾고 있었다. 이를 본 카이사르는 대노한 얼굴로 사공을 향해 소리쳤다. “노를 잡아라, 이 카이사르가 있는 한, 아무 걱정 없다. 배가 침몰하다니 말이 되는가!” 결국 배는 사공이 혼신을 다하는 바람에 침몰하지 않았다.

만일 이 절대 절명의 순간에 카이사르가 사공에게 신념을 심어주지 않았다면 카이사르는 물론, 모두가 바다 속에 수장되고 말았을 것이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바로 카이사르가 보여준 강한 신념과 자신감이 아닐까.


세상이 몹시 어지럽고 혼란스럽다. 모국에서 일어난 세월호 참사만으로도 우리가 겪기 어려운데 지구촌 곳곳에서 무슨 말세의 징후나 된 듯 온갖 재난이 요즘 거의 동시다발적으로 일어나 정신을 못 차릴 지경이다. 근래에만도 우크라이나 무력충돌, 시리아 내전, 나이지리아 여학생 피납, 아프카니스탄 산사태, 방글라데시 여객선 침몰, 터키 탄광 참사 등등, 일일이 다 헤아리기도 어렵다.

한국에서는 이번 세월호 사건으로 미국이민을 원하는 사람들이 10명중 4명이라고 한다. 그러나 미국인들 안전할까. 미국도 당장 캘리포니아에 산사태와 산불에 이어 최근에는 지구온난화의 영향으로 인한 산불, 홍수, 가뭄 식수난으로 미국민의 삶이 황폐해질 것이라는 미국기후평가 예측 보고서가 나와 이제 지구촌은 어디 한군데도 안전한 곳이 없는 듯하다.

이런 상황에서 내가 있는 한 아무 걱정이 없다고 당당하게 자신감을 보일 사람이 몇이나 될까, 공포와 불안으로 점철된 주변의 환경에 짓눌려 압도당하기 십상이다. 그러나 살아있는 한 우리는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 그것이 이 땅에 존재하고 호흡하는 우리들이 감당해야 할 필연적인 인생의 수레바퀴이다.

사방이 아무리 어둡고 힘겨운 일들로 가득 찼다 하여도 좌절하거나 뒤로 물러서서는 안 된다. 삶을 중단하는 한, 그것은 인생의 실패이고 마지막이나 마찬가지다. 설사 세월호 참사로 마음이 아파도 우리는 가슴에 묻고 일상은 계속해 나가야 한다.

중세시대 성당의 벽에 많이 새겨져 있던 수레바퀴 형상에 비유해 표현한 ‘인생의 수레바퀴’라는 말에는 중요한 포인트가 담겨 있다. 행복-상실-고통-희망이라는 인생의 연속적인 순환과정을 통해 끊임없이 변화하고 성장하는 삶의 지혜에 대한 가르침이다. 즉 자신이 바퀴를 어떻게 굴리느냐에 따라 삶에서 마주치는 상실감이나 고통, 부정적인 생각 등을 관리할 수 있음을 말한다.

300명 가까운 어린 생명을 바다에 수장시켜 크나큰 상실감과 허탈감이 온 나라를 휩쓸고 지나갔다. 남은 이들은 못내 아쉬워하고 떠난 이들에 대한 슬픔에서 못 벗어나고 있다. 그러나 살아있는 사람들에게 남은 것은 여전히 ‘고단한 삶’이다. 한국은 지금 소비심리가 줄어 자칫 IMF가 올지도 모른다는 우려감이 나오고 미국의 한인사회도 여러모로 불안정하다 보니 경제가 도무지 회복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고들 야단이다. 살아내기가 온통 불안한 현실이다.

앞이 잘 보이지 않는 불투명한 환경에서는 우울함, 두려움, 긴장감 등이 우리를 위협한다. 이럴 때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바로 이런 심리적 상실감을 뛰어넘는 자신감이다. 나를 잃는다는 것은 다른 어떤 소중한 것을 잃는 것보다 더 위험한 일이다. 그러나 우리는 정작 중요한 것은 놓치고 살고 있다. 실존주의 철학자 키에르케고르는 말한다. “너를 잃지 마라. 그것은 가장 위험한 상실이다.”

요즘처럼 세상이 혼란스러울 때 우리에게는 `내일 종말이 오더라도 오늘 사과나무를 심겠다’고 하는 희망적인 마음자세도 필요하다. 희망을 품고 정진해 나갈 때 태양은 다시 떠오를 것이기 때문이다.
juyoung@korea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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