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졸부근성

2014-05-17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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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민(공인회계사)

졸부란 글자대로 풀이하면 갑자기 벼락부자가 된 사람을 뜻하지만 실제로는 다른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가진 재산에 비해 언행의 품격이나 수준이 떨어지는 사람을 빗대어 일컫기 때문이다. 노력 없이 요행으로 엄청난 부자가 된 사람이 점잖지 못한 행동을 하면 여지없이 “저 사람 돈만 있지 하는 짓을 보면 역시 졸부야.” 라며 뒤에서 흉을 본다. 따라서 갑자기 부자가 됐어도 품위 있는 언행을 하는 사람은 졸부라는 호칭을 받지 않는다.

이번 세월호 참사를 보면서 혹시 대한민국이 졸부가 아닐까 라는 생각을 하게 됐다. 지난 60년 동안 우리는 찢어지는 가난을 극복하고 마침내 경제 선진국 대열에 이름을 올리게 됐다. 전 세계 역사에 이런 대단한 결과를 낳은 나라는 단 하나 우리밖에 없다고 얼마나 자부심을 가졌는가? 그러나 후진국성 사고로 시작된 세월호 참사는 선원들의 태도로부터 구조 작업, 사고 난 동기, 거기에 얽힌 비리, 보도하는 언론, 위정자, 그리고 전 국민 안전 불감증에 이르기까지 어느 하나 선진국의 자태는 찾아볼 수 없는 후지고 비참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내가 어렸을 적 한국에 있을 때 선진국의 의미를 부자나라 라고 배웠다. 그래서 우리도 선진국이 돼야 한다며 얼마나 경제 발전을 위해 노력을 했는가? 정치인마다 잘사는 나라로 만들겠다고 선거공약을 걸었고 지인들끼리는 “돈 많이 버세요.” 혹은 “부자 되세요” 라는 인사를 나눴다. 새마을 운동이 시작되면서 가장 많이 불렸던 노래도 “잘살아보세” 라는 곡이다.

아무튼 누구나 잘살아보자고 외치기만 했지 바로 살아보자고 하는 사람이 없었다. 그래서 도덕성은 결여되고 잘살기 위해 남을 짓누르고 본인만 앞서나가겠다는 물질만능주의가 판을 치게 됐고 행복 지수나 계층을 재는 잣대도 모두 돈이고, 돈이 없으면 주눅 들어 사는 죄인이 되고 말았다.

미국 이민 생활에서 스스로 깨달은 선진국의 의미는 달랐다. 국민이 선진문화 의식을 가져야 진짜 선진국이라는 것을 알게 된 것이다. 얼마 전 애틀랜타 출장이 있던 날 고르지 못한 일기 때문에 내가 탄 비행기가 연발을 했다. 애틀랜타에 착륙하니 환승객들은 손을 들어보라는 기내 방송이 이내 나온다. 그러면서 연착으로 인해 시간이 촉박하니 환승객들이 먼저 내릴 수 있게 협조해 달라는 것이다.

좁은 공간에 어떻게 협조가 가능할까 생각한 것은 나의 착각이었다. 단 한 번의 방송만 있었는데도 서로 이리저리 피해주며 마치 평소에 훈련이나 받은 사람들처럼 질서정연하게 움직여 순식간에 손을 들었던 환승객들이 한 줄로 서서 먼저 편히 내리게 해주었다. 아주 간단한 일례를 통해 선진국의 의미를 절실히 느꼈다.

이번 세월호 참사는 우리 모두가 진심으로 자성하는 계기가 돼야 한다. 돈 많은 선진국이라고 우쭐대는 품격 떨어지는 졸부근성을 버리고, 바르게 잘사는 그래서 모든 분야에 제대로 된 선진 의식을 가진 나라로 발전해 희생자들의 죽음이 헛되지 않게 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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