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자연’으로 돌아가라

2014-05-16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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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병임<논설위원>

지난달 14일 나이지리아 이슬람무장단체에 의해 납치된 여학생들이 회색 또는 검정색 히잡을 쓰고 맨발을 보인 채 나무 밑에 옹기종기 모여앉아 있는 17분 분량 영상이 지난 12일(현지시간) AFP 통신을 통해 전세계에 공개되었다. 솜털이 보송보송할 정도로 순진무결해 보이는 백여명의 여학생들이 이슬람 장옷을 뒤집어쓰고 코란을 암송하는 장면을 TV 뉴스로 보게 되었다.

납치, 감금, 강요, 협박, 폭언, 잔혹행위, 살인 등등 온갖 죄악을 다 저지르고 있는 보코하람 지도자는 이들 여학생들이 기독교에서 이슬람교로 개종되었다고 큰소리친다. 총칼을 든 납치범들 앞에서 잠시 이슬람 믿는다고 해야 살아남을 것은 자명한 일, 하지만 종교라는 것이, 강요해서 될 일인가.


나이지리아 동북부 치복시의 치복 공립중학교 여학생 276명은 기숙사에서 잠을 자다가 총을 든 이슬람 극단주의자들에게 납치됐다. 이들은 수감된 보코하람 조직원들을 석방하라고 요구했고 이를 수용치 않으면 여학생들을 노예로 팔겠다며 집단납치에 인신매매까지 전세계를 상대로 협박하고 있다.

나이지리아는 기독교 중심의 부유한 남부와 무슬림 중심의 빈곤한 북부로 양분돼 있는데, 마을 방화, 살인 등 무작정 테러로 악명을 휘날리는 보코하람과 정부군 간 교전이 날로 격화되고 있다고 한다.
구출작전을 지원하는 미국과 영국은 첨단 감청장비, 유인정찰기, 위성사진을 총동원 하고도 아직 여학생들을 못 찾고 있다. 영상에서 보이는 숲과 하늘, 땅을 보고 하루빨리 위치파악이 되어 이들을 구출, 여학생들이 잠자리와 먹을 것, 생리적 현상의 불편함과 극도의 공포에서 해방되기를 고대한다.
프랑수아 올랑드 대통령의 전 동거녀 발레리 트리에르바일레는 ‘우리 소녀들을 돌려줘’라는 뜻의 트위터 해시태그(#BringBackOurGirls)캠페인을 벌이고 프란치스코 교황, 미셀 오바마, 힐러리 클린턴 등 세계 지도자와 유명 인사들이 대거 참여하면서 나이지리아 여학생 석방 캠페인은 세계의 초관심사가 되고 있다.

단순히 이들이 나이지리아 여학생이기만 한 것은 아닌 것이 전 세계에서 억압받는 모든 여성을 상징하는 것이다. 물건도 아닌 사람이 어떻게 사고파는 대상이 되는지, 그것도 제멋대로 납치하여 협박하는 행위에서 비뚤어진 극단의 정점을 본다.
사실, 옛날부터 지금까지 전쟁과 전투의 희생자는 언제나 여성이었다. 전쟁이 나면 후방에서 생활고에 시달리면서 아이들을 키웠고 전쟁에 지면 남의 나라에 노예로 끌려가 갖은 능욕을 당했다.

지금도 여성억압이 뿌리 깊은 인도에서 일어난 버스 집단성폭행 사건뿐 아니라 가부장문화 아래 처참하게 짓밟힌 아프카니스탄 여성, 학교에 가다가 탈레반에게 피격당한 파키스탄 소녀 등 차별받고 왜곡된 여성들의 삶은 지구촌 곳곳에서 이어지고 있다. 일본군 종군 위안부로 끌려가 평생을 고통 받아온 우리의 할머니들도 여성의 성을 상품화 시킨 희생자로서 그 고단한 삶을 아직도 보상받지 못했다.
극단주의자와 광신도가 날뛰는 세상, 인간이 인간이기를 포기한 세상, 우리는 이럴 때 자연으로 돌아가고 싶다.

계몽주의 철학자 장자크 루소(1712~1778)의 ‘자연으로 돌아가라’ 근본사상은 ‘자연은 인간을 선량, 자유, 행복하게 만들었다, 그런데 사회가 인간을 사악, 노예, 불행으로 몰아넣었다‘며 문명 거부가 아니라 자유롭고 평등하지 못한 문명사회의 부조리와 모순을 지적했다.

춘추시대 노자(기원전 604년 추정~)의 ‘자연으로 돌아가라’는 그의 사상 <도덕경>에서 ‘사람이 우주의 근본이며 진리인 도의 길에 도달하려면 자연의 법칙에 따라 살아야 한다. 사람의 가장 순수한 양심에 따라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지키며 살라’고 한다. 교만, 욕심, 위선, 야심, 명분, 작위적 행동, 인위적인 속박 등을 버리라는 것이다.

두 사상가가 말하는 ‘자연’은 산과 바다를 뜻하는 것이 아니라 교육, 자유, 경제적 기회와 평등, 그리고 가장 인간적인 양심을 말한다. 한국이나 나이지리아나 요즘의 세태에 가장 절실한 것이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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