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드라마, 볼 것인가 말 것인가

2014-05-09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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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병임(논설위원)

한국 드라마와 오락 프로에 취해 사는 한인들이 의외로 많다. 동네친구, 직장 동료, 같은 교인, 1.5세, 유학생들은 한국 드라마나 오락프로에 대해 얘기하며 요즘 재미있는 것이 무엇인지 물어보기도 한다.인터넷 TV채널에 비즈니스, 코미디, 뉴스 외에 한국 드라마가 따로 분류되어 뜰 정도로 미국인을 비롯 타인종 고정 팬들도 생기고 있다. 그들은 온라인 비디오 한국 드라마를 보고 댓글을 달기도 한다.

20년 전에는 인기 있는 드라마가 나오는 날이면 비디오가게에 장사진을 이뤘다. ‘모래시계’, ‘마지막 승부’ 같은 비디오테이프는 미리 예약을 하고 찾아야 할 정도였다. 지금은 무료 인터넷 사이트가 많다보니 수천 수만 개의 한국 드라마, 오락프로들을 합법적인 인터넷 방송 사이트를 통해 볼 수 있어 비디오점은 사양길에 들고 많은 사람들이 집에서 편하게 즐기고 있다.

지난 4월 일어난 세월호 참사는 한국방송 채널마다 뉴스, 기획프로에서 심층보도를 하고 있고 그것을 볼 때마다 슬픔, 분노, 실망, 좌절을 감당하기가 힘들어 채널을 돌리다가 아무 생각 없이 한국 드라마에 흠뻑 빠지게 되었다.


한국 문화와 정서를 고스란히 지니고 있는데다가 긴장, 흡입 기능이 있어 괴롭고 힘들고 속상하고 생각하고 싶지 않은 일들을 완전히 잊게 만들어주었다. 시간이 없어 못 보았던 몇 년 전에 나온 인기 드라마를 인터넷에서 찾아보면서 현실의 심난함을 잊어나갔다.

대체로 입지전적인 인물, 신데렐라 스토리, 시월드 이야기, 출생의 비밀, 권력과 폭력의 검은 커넥션, 권모술수, 음모와 배신, 복수 등을 다루는데 비비꼬인 남녀관계, 미치광이, 성격파탄자까지 나오는 드라마가 많았다. 드라마는 그 사회의 현상, 나아가 드라마를 즐겨보는 국민들의 일반적인 생각과 개념을 보여준다는데 한국민의 정서가 걱정이었다. 그러나 탄탄한 스토리, 기막힌 반전, 뛰어난 영상, 무한한 상상력으로 좋은 드라마도 있었다.

최근에 본 것으로 ‘쓰리 데이즈’와 드라마 ‘정도전’이 있다. 대통령 저격사건을 둘러싸고 경호원 한태경(박유천 분), 순경 윤보원(박하선 분)이 진실을 밝히고자 맨몸으로 권력과 금력에 맞서는데 그들에게는 총알도, 사고도 빗겨간다. 재벌과 정치, 권력이 손잡으면 당하는 것은 불쌍한 국민뿐, 그래도 뒤늦게나마 잘못을 바로잡고자 ‘대통령인 내가 국민을 지킨다’는 이동휘대통령(손현주 분)이 있어 조금은 위로가 됐다.

그리고 사극 ‘정도전’, 고려말, 망해가는 나라에 좌절하고 개혁을 하려다 끝내 역성(易姓)으로 돌아선 이성계(유동근 분)와 정도전(조재현 분), ‘이 나라의 진정한 주인은 백성’이라고 되풀이 말하지만 조선은 신진사대부의 나라, 왕의 나라가 되었다. 그래도 1392년 조선 창업은 멋진 한글을 만들어 준 세종대왕과 ‘난중일기’를 남긴 이 충무공 같은 사람이 있어서 인정받을 만하다.

수많은 드라마가 난무하고 있지만 좋은 드라마를 찾아내기가 쉽지 않다. 좋은 드라마라 해도 지루하고 심심하면 보는 사람이 없으니까 일단 어느 정도 막장을 기본으로 깔고 있다. 아마 보고난 뒤 시간 아까워하고 후회하는 드라마가 나쁜 드라마일 것이다.

좋은 드라마, 나쁜 드라마가 있다면 좋은 국민, 나쁜 국민이 있고 좋은 한인, 나쁜 한인도 있겠다. 이웃의 아픔에 같이 울고, 남을 속이거나 거짓말을 못하는 사람, 조금 손해보고 사는 사람, 아쉬울 때 의지가 되는 사람, 그런 사람들이 좋은 사람이 아닐까, 그들이 좋은 국민, 좋은 나라를 만든다.

미국에 살면서 너무 많은 시간을 한국 드라마를 비롯 한국 뉴스에 시간을 빼앗기는 것은 그야말로 허망한 일이다. 아무리 대리만족이고 돈 안 드는 이민 스트레스 해소책이라지만 시간을 정해놓고 적절하게 활용해야 한다.

드디어 봄이라고 할 수 있는 뉴욕 날씨가 되었다. 주말이 오면, 한국 드라마 볼 것인가 말 것인가 망설이지 말고 무조건 TV, 컴퓨터, 아이패드 끄기다. 밖으로 나가 봄바람을 쐬고 푸른 초원도 바라보아야 한다. 그래야 머리가 맑아져 다음 주를 준비할 수 있다. 남의 인생 그만 들여다보고 내 인생 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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