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드넓은 우주를 날자

2014-05-05 (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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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병렬(교육가)

요즈음 세월호 침몰 뉴스에 매달려있는 이유가 있다. 거기에 공교롭게 수학여행 학생단체가 타고 있었기 때문이다. 배의 밑바닥 파란 꼬리가 물위에서 아주 자취를 감춘 순간의 허탈하였음은 그 안에 갇힌 학생들 때문이다.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났을까.

처음에 이 상황을 시청하면서 혹시 수학여행을 계획한 학교 측에 불찰이 있었을까봐 염려하였으나, 한국 내에서는 선박회사의 경영을 근본적으로 조사하고 검토하는 일에 초점을 두고 있다. 직업 중에 어려운 것은 사람을 다루는 일이다. 그 이유는 사람의 생명은 보상할 수 없기 때문이다.


필자는 이곳에서 40여 년 동안 미국학교 건물을 임차해 사용하면서 느끼는 것이 있다. 뉴욕시 교육국에서 반드시 요구하는 세 가지가 있다. 학교 건물 중 임차하는 교실 수, 화장실 수, 강당, 체육실 사용 빈도 수를 보고함은 물론이고, 첫째 안전요원 고용, 둘째 안전보험 가입 증명서, 셋째 비영리단체로서 충실히 의무를 지키고 있다는 증명서를 요구한다. 이에 따르는 비용은 그 다음의 문제이다. 이렇게 까다로운 절차를 불평하다가도 모든 것이 ‘안전’때문이라고 생각하며 감사한다.

안전이란 이렇게 예방하여도 완전히 막을 수 없는 것 같다. 그러나 이번 사건을 보면서, 출발 전에 학교 측도 한번쯤 승선할 배의 안전 점검을 하였으면 좋았을 것이라는 생각을 한다. 그러나 큰일을 계획 진행하는 과정에서 간혹 빠지는 일들이 있게 마련이다. 더욱이 수학여행 학생들을 인솔한 교사 몇 분이 희생되었고, 내가 이 일을 전적으로 책임지겠다고 자결한 교감을 생각하면 죄스러운 말일 뿐이다.

한국에서는 이후 수학여행을 일체 금지한다고 했다. 사건이 워낙 크기 때문에 이런 결정을 할 수도 있겠다. 그래서 신문 지상에 찬반론이 난 것을 읽었다. 수학여행은 교육적인 가치가 있지만, 지금은 그것의 찬반론을 말할 때가 아닌 줄 안다. 시기가 오면 다시 생각하기로 하고 일단 보류하기로 하자.

사건이 터지면서 거기에 이어지는 여러 가지 생각할 문제들을 던졌다. 첫째는 ‘어른들의 말을 잘 듣는다’의 결과이다. 그대로 방에 있으라는 어른의 말을 따른 학생들이 희생되었다. 베이징에서 중국기자가 한 말이다. “한국은 유고의 바탕이 있어서 학생들이 그 말을 지킨 듯하다. 우리 학생들은 아마 유리창을 깨고라도 밖으로 뛰쳐나갔을 것 같다.” 이 말을 생각해 보자. 그의 말은 어른의 지시를 따른 학생들이 변을 당한 것이 안타까워서 하는 말이다.

그렇다면 학생들은 어떻게 하는 것이 현명했을까? 이 물음은 구호인들의 ‘어르신 우선’으로 연결된다. 이는 유럽의 경우 ‘어린이, 여자, 노인’의 구호 차례와 차이가 난다고 한다. 하지만 ‘아기, 아기’를 연발하면서 아기를 구하는 모습도 있었으니 잊어버리자.

다음은 새로운 장비가 도착하고, 바다의 조류 관계가 적당하다는 말을 듣고 구조성과를 기대했지만, 조난한 사람을 구하는 일은 시간이 걸렸다. 어떠면 기적적으로 살아있는 생명을 구할 수도 있겠다던 기대가 깨지면서 우리들의 기대는 차츰차츰 줄어든다. “빨리 나와야 같이 집으로 가지” 뜨거운 마음의 기대가 차차 작아지며 마음에 멍에가 생긴다.

마지막 소원은 빨리 바다에서 시신을 인양하는 데 희망을 건다. 그래서 “빨리 나와야지…….”라고 혼잣말을 하게 된다. 거의 다 컸지만, 아직도 인생을 꽃피워 본 일이 없는 어린 영혼들! 그들에게 오직 용서를 빌 뿐이다. 이번 사건은 경제적으로 성공하였다고 들떠있는 한국, 물질 제일주의로 변해가는 한국인 우리들에게 경종을 울린 것이다. 우리는 삶의 가치를 새롭게 정립할 때이다.

우리 못난 어른들의 갈팡질팡, 허둥지둥이 침몰한 사람들을 적기에 구제하지 못하였다. 또 조난당한 인명을 구할 수 있다고 믿었던 크고 작은 기계와 기재들을 유용하게 사용할 수 있는 평상시의 훈련이 부족한 것처럼 느껴졌다. 희생자의 엄청난 수효를 보면서 자책하는 마음뿐이다. 세월호에서 희생된 어린 영혼들, 우리 못난 어른들의 죄를 용서해줘요. 그리고 이제는 드넓은 우주를 마음껏 날아다니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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