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입 하나, 귀 둘

2014-05-02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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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병임(논설위원)

참담하도록 잔인했던 4월이 가고 5월이 왔다. 지난 한 달간 주위 많은 이들에게 ‘한국에 다니러 간다’는 전화가 왔다. 해외동포 행사 참여차, 해외계좌신고제 시행을 앞두고 계좌 정리하러, 방학 맞은 학생들이 한국 가기 전에, 어머니 더 늙기 전에 등등 뉴욕에 사는 우리들에게 한국 갈 이유는 많다.

그들은 한결같이 요즘 한국 사회의 분위기가 불안하고 뒤숭숭하기 짝이 없다고 전한다. 한 달 뒤 6.4지방선거가 있지만 재난 안전 분야 공약을 과제로 한 정치인을 과연 믿어도 될 까 하는 것이 세월호 참사를 놓고 다들 말은 잘 하는데 수많은 말, 말, 말 들 속에 실천하는 행동이 없다는 것이다.


보도 방향도 우왕좌왕, 말들의 난무가 너무 하다싶었는지 한국기자협회 스스로, 세월호 참사관련 10개항의 보도 가이드라인을 발표했다. 왜곡된 속보경쟁, 부정확하고 자극적인 내용, 예의를 벗어난 취재형태 등을 문제로 지적했다는데 가장 사람들의 분노를 자아낸 것은 SNS를 통한 가짜 메시지라고 한다.
사람의 목숨을 놓고 올린 거짓 메시지에 악성 댓글까지, 아무리 말의 홍수 속에 사는 오늘날이라지만 정도를 넘으면 그야말로 세치 혀가 사람을 잡는다. 오죽하면 ‘사람들의 말은 쇠라도 녹일 수 있다’, ‘혀가 네 마리 말이 끄는 수레바퀴보다 빠르다’는 표현이 있을까.

특히 유언비어(流言蜚語)는 ‘흘러가는 헛소문-유언(流言), 바퀴벌레 같은 비어(蜚語)’로 조선시대에도 ‘어진 이를 방해하고 국가를 병들게 하는 유언비어를 퍼뜨리는 자는 참형에 처해야 한다’(1550년 명종실록 상진의 말)고 기록되어 있다.
한국에서 고등학교를 다녔다면 국어시간에 남파 김천택이 펴낸 시조집 ‘청구영언’(靑丘永言)에 실린 작자 미상의 시조를 외운 적이 있을 것이다.‘말하기 좋아하고 남의 말을 말을 것이/남의 말 내 하면 남도 내말 하는 것이/말로써 말이 많으니 말 말을까 하노라’ , 이는 말이 말을 낳으니 말을 많이 하지 말라는 것이다.

이에 꽤 적절한 영어표현이 하나 있다. 어느 회사나 꼭 한 명은 있는 빅 마우스(big mouth), 수다쟁이를 가리키는 말로 그 사람의 입이 크다는 것이 아니라 그 작은 입이 만들어내는 수많은 문제들을 빗대어 표현한 것이다.

사무실 안의 빅 마우스는 너 일수도 있고 나 일수도 있다. 무심코 한 말이 사람들과의 관계를 파괴시키고 엄청난 화를 불러올 수 있다. 우리는 말의 폐단을 이렇게 잘 알고 있지만 뉴욕한인사회에는 말로 인한 불협화음이 그칠 날이 없다. 자기 입장만 주장하고 다른 이를 끌어내리는 험담을 하다가 급기야 소송까지 하는 단체의 장이나 이민 선배들을 보면 옆에서 지켜보는 이들도 심란해진다. 같은 민족끼리 더 단단한 결속은 못 이룰망정 기를 쓰고 싸우는 모습은, 그러려고 이민을 왔나 싶다.
한인단체에 봉사하겠다는 좋은 마음으로 나왔다가 아무리 잘해도 돌아서면 욕 하고 서로 비방하는 모습에 놀라 아예 한인사회와 인연을 끊고 사는 이는 오히려 그것이 마음이 편하다고 한다.

유대인 속담에 ‘인간이 입으로 망한 적은 있어도 귀로 망한 적은 없다’고 한다. 입은 자신을 주장하지만 귀는 다른 사람의 주장을 듣는 것이다. 사람을 비롯 동물의 눈과 귀는 두 개, 입은 하나인 것을 보면 주위를 잘 살펴보고 다른 소리를 잘 들으라는 것이다. 생각 없이, 성급하게 말부터 앞서지 말아야 한다. 하나의 입은 꼭 해야 할 말을 하라는 것이다.

한인사회의 장점은 많다. 개척정신으로 기반을 닦았고 열심히 일해 번 돈으로 가족 부양하고 아이들 교육을 시켰으니 떳떳하고 자긍심도 넘친다. 봉사활동도 열심히 한다. 그것이 다가 아니다. 가정, 직장, 단체, 교회에서 내 목소리만 높이지 말고 다른 이의 목소리를 귀담아 들어야 한다.

따뜻한 말 한마디가 절망에 빠진 자를 끌어올리고 세상을 살아갈 힘을 주지만 사람을 상하게 하는 말은 한 사람의 인생을 무너뜨린다. 생각이 깊은 사람에게 다가온 유언비어는 그곳이 종착역이 된다. ‘입 하나, 귀 둘’이 왜 있을까를 생각하는 것은 오늘을 지혜롭게 사는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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