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엄마, 사랑해!”

2014-04-26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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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명욱 <객원논설위원>

세상은 우리에게 많은 것을 가져다준다. 그 중엔 기쁨도 있고 슬픔도 있다. 기쁨은 하늘이 화창하게 빛을 비추이는 날과 같고 슬픔은 검은 먹구름에 찬비를 뿌리는 날과도 같다. 일찍이 불교의 창시자라 할 수 있는 석가모니는 생을 고(苦)라 하였듯이 우리네 삶은 기쁜 날 보다는 슬픈 날, 괴로운 날들이 더 많지 않나 싶다.

아침마다 일어나 화장실에 가면 거울을 보고 환하게 웃는 얼굴을 해 본다. 하루의 일과를 웃는 얼굴로, 감사의 마음으로 시작하자는 의미다. 그러나 그 얼굴은 얼마 가지 못한다. 어느새 변해 버린 얼굴은 무표정하거나 아님, 그저 그런 얼굴이 되어 있다. 세상이, 아니 세상살이가 우리네 마음과 얼굴을 그렇게 만들어 버린다.


9.11테러로 수천 명의 사람들이 목숨을 잃었다. 그 중에는 한인들도 포함돼 있다. 시신도 찾지 못한 채 세상을 뜬 9.11테러 희생자들의 가족들은 지금도 상처를 안고 살아간다. 지인 중에 매주 교회에서 만나는 희생자 가족이 있다. 사랑하는 둘째, 막내아들을 잃어버렸다. 그들이 당한 당시의 슬픔과 고통을 어디에다 비하랴.

13년이 지난 지금 그들은 살을 깎아내 듯 아팠던 슬픔을 신앙으로 극복해 오고 있다. 아주 가까이서 10여년을 보아 온 그들의 모습이다. 아버지와 어머니, 또 큰 아들은 희생된 아들과 동생의 이름을 새긴 재단을 만들었고 그동안 수백 명의 학생들에게 장학금을 주어오는 등 사회봉사에 앞장서며 잃은 아들을 기리고 있다.

세월호가 진도 앞바다에 침몰 된지도 10일이 지나고 있다. 슬픔이 온 국민을, 아니 온 세계인의 마음을 적시고 있다. 아직도 한 생명이라도 살아오기를 간절히 기다리는 우리다. 그러나 들리는 소식은 시신만 건져 질 뿐 기쁨의 소리는 없다. 이젠 실종자 가족들도 지쳐만 간다. 그러나 “단, 한 생명만이라도!”

남은 가족들의 가슴 속에 깊이 박힌 슬픔과 고통의 상처를 어찌해야 지울 수 있을까. 평생 지울 수 없는 슬픔으로 남을 수밖엔 없는 건가. 9.11테러로 희생당한 가족들이 슬픔을 안고 살아가듯 품고 살아가야만 하나. 시간이 약이 될까만, 치유와 회복의 길은 시간에 의존할 수도 있다지만 오늘의 이 고통을 어찌하랴.

“여보, 사랑해. 애기를 잘 부탁해.” “여보, 정말 당신을 사랑해. 살아서 당신을 다시 봤으면 좋겠어. 안녕!” “여보, 인생을 즐겁게 살아. 최선을 다하고, 사랑해!” “동료들이 피할 수 있도록 도와줘야 될 것 같아, 사랑해” “당신이 남은 인생에서 어떤 결정을 하던 꼭 행복해야 돼, 사랑해!” “도저히 숨을 쉴 수가 없어. 엄마 사랑해!”
9.11때, 마지막 말들이다. “걱정하지 마, 너희부터 나가고 내가 나갈게” “용서해 줘, 진짜 사랑해” “아이들 구하러 내려가 봐야 돼, 돈 아이들 위해 써요” “누나, 배가 이상해. 누나, 엄마한테도 말해 줘. 사랑해!” “전부 사랑합니다!” “엄마, 내가 말 못할까봐 보내(문자) 놓는다. 사랑해!” “엄마, 사랑해!” 세월호, 마지막 말들이다.

세상에서 가장 고귀한 단어. 그것은 사랑이란 단어가 아닐까. 9.11때나 이번 세월호 침몰 때나 가족간에 혹은 부부간에 또는 형제간에 가장 마지막 말로 남긴 말들은 대체가 “사랑한다”는 말이다. 그래, 죽음을 눈앞에 두고 마지막으로 할 수 있는 말. “사랑해!”. 사랑은 죽음도 끊을 수 없는 우주의 인연인가 보다.

비록 생사를 달리해 이별은 했다만 사랑으로 하나가 될 수 있음에야. 단원중학교에 다니는 조아름양은 바다 선착장에서 “보고 싶어요, 오빠. 오빠가, 언제 올까요!”라며 일주일이 넘도록 앉아서 기다린다. “우리 딸 살아 돌아오면 깔끔한 모습 보여주려 이렇게 이발까지 했는데” 차디차게 식어 돌아온 딸을 보며 통곡하는 아빠의 모습.

한 평생 사는 동안 우리에게 다가오는 슬픔과 기쁨. 기쁨보다 슬픔이 더 많은 게 인생 아니던가. 그러나 슬픔을 극복하고 기쁨을 향해 나아가는 자세 또한 우리네 인생만이 가진 하늘이 준 복이 아니겠는가. 하늘이여, 다시는 이런 비극이 되풀이되지 않게 도우소서! “엄마, 사랑해!” 가족들이여 빨리 회복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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