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디스토피아

2014-04-25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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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희은(경제팀 차장)

세월호 침몰 사고가 난지 열흘이 지났다.한국을 넘어 미국이 프랑스가, 전 세계가 미디어를 통해 이 소식을 실시간으로 전하고 있다. 먼 나라에서도 스마트폰으로 사망자의 시신 인양 과정을, 실시간 업데이트되는 시신의 숫자를 지켜본다.

온라인상의 추모 물결도 이어진다. 각 포털 사이트마다 노란 리본에, 기사마다 이번 사고를 안타까워하는 댓글이 달린다. 늑장대응과 소극적인 대처로 일관한 정부와 본인의 임무로부터 도망친 선장을 비판한다. 다시는 이런 일이 생기지 않아야 한다고 성토한다.


헌데 이들의 안타까운 댓글을, 분노를 온라인을 통해 보는 것이 참 답답하다. 익명의 게시판들은 참 뜨겁다. 언제나 사고가 터지면 온라인에서는 거의 모든 게시판이 안타까움으로 터질 것 같다. 그래서 달라진 것이 있었나? 천안함 때도 그랬다. 그때도 슬퍼하고 분노했다. 달라진 것은 하나도 없다.

삼성과 애플이 스마트폰 신제품을 잇따라 내놓고, 사람들은 스마트폰을 들여다보며 실시간 뉴스에 분노하고 슬퍼하지만 딱 거기까지다. 내 시간이 허용된 만큼 슬퍼하고 내 여건이 허용된 만큼 표현할 수 있게 맞춰진 세상이다.

사고는 오프라인 세상에서 벌어졌는데 왜 사람들은 온라인의 페이스북과 트위터로만 슬픔을 쏟아내는가. 거리에서 변화를 외치던 큰 목소리는 예전보다 잠잠해지고, 온라인은 더욱 뜨거워졌다. 온라인에서 아무리 외쳐봤자 오프라인에서 권력을 쥔 사람들이, 행정의 우두머리들이 끄덕이나 할까? 한손 안에 세상을 다 볼 수 있는 세상이라서 인간은 소극적이고 무기력해지고 있다. 현상은 있는데 실체가 없다.

전자업체들은 첨단 과학기술의 발달을 유토피아에 빗댄다. 실제로 우리의 행동반경이 온라인으로 넓어지고, 멀리서도 즉각 메시지를 전달할 수 있게 편리하다. 하지만 진짜 인간의 행복을 보장해주는 유토피아로 가고 있는지 디스토피아로 퇴행하고 있는지 생각해볼 문제다.

산업이 점차 발달한들, 행동이 없고 의지가 없는 인간들이 사는 세상에서 무엇을 기대하는가. 장비가 아무리 좋은들 인간을 위해 쓰지 않고 온 세상 사람들에게 메시지를 전달할 수 있다 해도 변화를 위한 행동이 없다면 무슨 소용이 있을까.

승선했던 학생들의 911 신고 메시지와 가족들에게 보냈던 메시지가 그래서 더 마음 아프다. 모순된 세상 때문에 의협심이 가장 강하고 우정이 뜨거웠을 순수한 나이의 학생들이 희생됐기에 안타까움이 더한다. 주말에 비가 온다고 한다. 대자연의 눈치도 알아차릴 수 있는 시대인데 왜 행동은, 현실은 이럴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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