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샐러드볼의 한국 채소이다

2014-04-21 (월)
크게 작게
허병렬 (교육가)

이런 글을 읽었다. ‘미국 시민권자가 됐다면 한국계 미국인으로서 주류사회에 동화되는 삶을 살도록 노력하는 것이 좋다고 본다.’ 그럼 2세들의 한글교육도 필요하지 않다고 보나? ‘꼭 필요하지는 않다고 본다. 물론 환경이 된다면 한국어도 하고 영어도 하는 게 좋겠지만, 억지로 한국어를 가르치려고 아등바등하는 것은 이해하지 못하겠다…….본인이 원하지 않는 한 한국인의 뿌리와 문화.언어를 강요할 일은 아니라고 본다.’ 이렇게 주장하는 분에게 몇몇 미국학교의 한국어시간에 대한 의견이나 ‘이중언어’ 운운하던 것이 어느새 ‘다중언어’운운하는 시대로 변화한 현상에 대한 견해도 듣고 싶다.

미국을 흔히 샐러드가 담긴 그릇 즉 ‘샐러드볼’이라고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물론 여러 민족이 함께 모여 사는 나라를 뜻한다. 싱싱한 채소가 골고루 섞인 샐러드가 왜 미국을 상징할까. 미국이 지닌 국력이 다민족이 발산하는 에너지의 산물이기 때문이다. 미국이 뿜어내는 새로운 아이디어가 여럿이 섞인 데서 분출되기 때문이다. 각 민족이 가지고 있는 ‘다름’이 강력하고 다양한 미국력 산출의 모체인 것이다. 그래서 미국은 각 민족의 고유한 문화가 융성하도록 격려하고 있다. 가까운 어떤 나라에서는 한국학교에 협조금을 보내기도 한다.


하지만 ‘미국인으로서 주류사회에 동화되는 삶을 살라’는 말은 옳은 지적이다. 따라서 한국내의 ‘국어’는 ‘한국어’가 되고, ‘우리나라’는 ‘미국’을 가리키게 된다. 국기는 ‘미국기’와 ‘태극기’를 구별하고, ‘미국문화’와 ‘한국문화’를 두루 즐기는 것이 주류사회에 사는 방법이다. 이러한 생활이 자녀들에게 혼란을 가져오는 일은 없을까. 그들의 미국생활은 환경이 다양해 이미 다른 언어, 생활양식, 축제일... 등에 익숙하여 이를 즐기고 있다. 따라서 제각기 자랑거리를 가지고 한자리에 모여 이를 소개하고 같이 즐기자는 모임에 한국계 어린이들도 가지고 갈 보따리가 있어야 한다. 그게 바로 ‘한국문화교육’이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한국어교육이나 한국문화교육을 강요할 일이 아니다’라는 지적은 교육방법과 관련이 있다. 이는 어른들의 의욕 과잉이 빚어내는 부작용이고, 교수방법의 연구 부족이다. 학생들에게 학습 동기를 부여하고 재미있게 학습하는 방법을 연구하는 것은 담당 교사나 학부모의 일이다. ‘가르치려고 아등바등 하는 것’은 ‘가르치는 방법을 꾸준히 연구할 것’으로 바뀌어야 할 것이다.

‘한국인의 뿌리와 문화, 언어를 강요할 일은 아니다’는 ‘이를 배우고 싶도록 의욕을 북돋아 주어야 한다.’로 바꾸는 것이 바람직하다. 무엇 때문인가? 어린이들이 이 풍토에 적응하는 힘을 기르기 위해서이고, 미국에 공헌하는 길을 알리고 싶어서이다. 한국문화교육은 미국 국력을 다양하게 만드는 데 도움이 된다. 한국문화교육은 결코 배타적인 것이 아니고, 미국문화와 인류문화에 공헌하는 길임이 확실하다.

사람들의 생각은 생활하는 환경과 관계가 있어, 현지에서 멀리 떨어진 곳의 생각은, 그만큼 먼 거리의 영향을 받는다. 여기서 바라보는 한국내 조기 영어교육에 대한 의견이 있듯이, 맨 앞에 예거한 것처럼 한국 내에는 미국 한국사회의 자녀교육에 대한 의견이 있다. 이는 서로 관심이 있고, 사랑이 있는 증거라고 보며 환영한다.

한국계 미국인들은 미국의 거대한 샐러드볼의 한 요소이다. 여기에 알맞게 제 맛을 내면서, 샐러드의 맛을 한층 더 풍미 있게 만드는 역할을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나는 샐러드볼 속에 섞인 한국채소이다. 내가 할 일은 샐러드의 맛에 도움을 주고, 내 독특한 맛을 다른 채소나 과일에게 알리는 일이다.

‘너희도 이렇게 풍미 있는 채소가 있었구나! 네가 샐러드의 맛에 새로운 향기를 넣었다.’라는 찬사를 듣고 싶다. 그래서 이곳의 한국문화교육은 미국인으로서 주류사회에 동화하는 길이다. 또한 한국계 미국인의 삶이 되는 이유이다.

카테고리 최신기사

많이 본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