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풀어보고 싶지 않은 상자

2014-04-19 (토)
크게 작게
김길홍(목사/ 시인)

최근에 커네티컷에서 뉴욕 퀸즈의 한인 타운으로 이사를 왔다. 목사는 책들이 때로 참고서도 되고 전시용도 된다. 그래서 대체로 책이 많은 편이다. 이사 하는데 가장 무거운 짐은 책이다. 50여년 모아둔 책들이 산더미 같다. 지난해 눈사태로 지하실에 물이 잠겨 수많은 책들을 버렸다. 어느 정도 정리되고 나서도 아직 묶여진 채 풀지 않은 상자들이 있다. 그것은 패 (牌)가 들어 있는 것이다.

벤자민 프랭클린은 “돈을 잃으면 조금 잃은 것이고, 명예를 잃으면 절반을 잃은 것이고, 건강을 잃으면 모두 잃은 것” 이라고 했다. 한때 그것들을 받을 때 마다 감격스러웠던 때가 있다. 무슨 대단한 훈장처럼 말이다. 마치 명예를 얻은 것처럼, 안수패, 임직패, 감사패, 공로패, 기념패 인증패, 은퇴패 등등. 유명 인사가 아니니 이다음 기념관을 세워 보관해 줄 것도 아닌데, 그것들을 소중히 간직하고 있었다. 그리고 무슨 자랑이라도 되는 것처럼 서재에 즐비하게 걸어 놓았었다.


나폴레옹이 부하들 중 전쟁에 공헌 한자들에게 집이나 다른 것으로 포상하면 시큰둥하다가 가슴에 조그마한 훈장을 하나 달아 주니 생명 걸고 충성하여 싸우는 것을 보았다. 거기서 힌트를 얻어 오늘날 군인들이나 경찰관들에게 같은 전통이 되고 있다. 그래서 군의 별자리나 경찰의 고위 간부는 가슴에 훈장으로 장식한다. 재미있는 이야기는 수년 전 우간다 대통령이었던 ‘이디 아민’은 온 몸에 훈장을 달고 밴드를 동원하고 유엔총회에 나타났단다. 유엔 대표들을 따라온 가족들인 어린아이들이 무슨 일인가 하여 나가니 어른들이 아이들을 잡으러 따라 나가 한 때 아수라장이 되어 해프닝이 벌어졌단다.
본인이 목회를 할 때 ‘이디 아민’의 주치의(主治醫)였던 분이 있었다. 그 나라는 호적이 없어 나이를 모른다. 범죄를 저지른 자들을 이(耳)를 보고 나이를 측정 한다. 죽을 사람들 중에 16세 아래 미성년이라 하여 주치 의사(Dr. Kim)인 그가 많은 사람을 살려 주었단다.

아침에 집 뒤편에 쌓아 놓은 아직 풀지 않은 이삿짐들 사이에 낀 ‘패(牌)들이 들어 있는 상자’ 가 눈에 띄었다. 그런데 풀어보고 싶지 않았다. 아니 관심조차 없었다. 왜 그럴까? 아마도 늦게 철이 들어가는 모양이다. 나이 칠십이 되어 철이 들어간다면 웃겠지만 그나마 천만다행이다. 어떤 사람은 죽을 때 까지도 철이 안 들고 가는 경우도 있으니까.

최근 깊이 생각되는 것은 ‘천국에 가면 남는 것이 무얼까?’ 이다. 해답은 오직 한 가지, 이 세상에서 ‘사랑한 것’ 뿐일 것 같다. 그래서 “예수께서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것이 가장 큰 하나님의 말씀” 이라고 하셨던가. 나이가 들어가면서 눈물이 많아 졌다. 하나님을 사랑한 자 들, 사람을 사랑 한 자들을 생각하면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나온다. 그래서 하나님과 인간을 동시에 사랑하셨던 예수를 생각하면 한없이 눈물이 나온다.

일생동안 목사로 목회를 한다고 달려 왔는데... 혹시나 뜯어보고 싶지도 않은 패(牌 )들을 위해 동분서주 하던 목사는 아니었나? 이제 와서 누군가에게 권면하고 싶은 말은 늦게 철들지 말고, 패(牌)가 없어도 좋고 안 받아도 좋으니 “사람을 사랑하고, 하나님을 사랑하자” “우리가 영원히 거주할 하늘나라(天國)에 간직될 상패를 받자”

카테고리 최신기사

많이 본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