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손을 씻은 빌라도

2014-04-14 (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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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효섭<아동문학가/목사>

인류 역사상 빌라도만큼 욕을 먹은 사람은 없을 것이다. 예수에게 십자가형을 내린 장본인으로서 2000년 동안 욕을 먹고 있다. 그는 로마가 파견한 유대 지방 총독으로서 예수 재판을 주관하였다. 그의 양심도 예수의 무죄를 믿었고 그의 아내도 꿈자리가 사납다며 예수의 일에 참견 말라고 충고하였지만 제사장 장로 등 종교 지도자들에게 매수된 폭도가 두려워 정치적 발뺌을 한다.

그 방법이 군중 앞에서 손을 씻는 예식이었다. 사형 선고를 내리긴 하였으나 자기는 이 사건에 무관하다는 어리석은 표현이다. 물이 손의 먼지는 지우겠지만 허물과 가책, 책임과 죄는 지울 수 없다. 기독교인들은 ‘사도신경’이 생긴 후 1,700년 동안 “본디오 빌라도에게 고난을 받으사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고”라고 그의 이름을 부르며 정죄하고 있다.


조물주의 솜씨를 기막히게 보인 작품이 손이다. 자유자재의 굴신력과 예민한 감각, 놀라운 탄력과 파압력도 있다. 이 손이 있어 사람이 도구를 만들어 문명을 개발하였기 때문에 학문적으로 사람을 ‘공작하는 동물(Homo Fabel)’이라고 부른다. 그 손으로 발명 건설 제작 집필 개척이 가능했고 사랑의 표현에도 큰 몫을 한다.

그러나 문제는 어떤 손이냐 하는 것이다. 죽이는 손도 있고 살리는 손도 있다. 빼앗는 손도 있고 주는 손도 있다. 총을 잡는 손도 있고 호미를 잡는 손도 있다. 가롯 유다처럼 스승을 팔아 현금을 챙기는 손도 있고 빌라도처럼 현실에 타협하는 비겁한 손도 있다.

알렉산더 대왕은 자기가 죽으면 손은 묶지 말라고 유언하였다. 세계를 제압하고 천하를 호령하던 알렉산더도 죽으면 별 것 아니구나 하는 교훈을 모든 조객들에게 보여주기 위해서였다. 런던의 유명한 노숙자 지미 스튜어드 씨는 손바닥에 “Thank you"라고 쓰고 다닌다. 구걸용 간판이다. 얻어먹는 것을 평생직으로 하고 있는 손이다.

테레사는 열여덟 살 때 유고슬라비아의 집을 떠났다. 어머니가 테레사의 손을 잡고 말씀하셨다. ”네 손이 하나님의 손을 놓치면 안 된다. 네 손이 예수님의 손처럼 되어라.“ 테레사 수녀의 손은 정말 험한 손이었다는 기사를 읽은 기억이 난다. 캘커타 빈민굴에서 가난하고 병든 사람들을 평생 섬긴 손인 것이다.

예수는 자기의 부활을 믿지 못하는 제자에게 ”내 손과 발을 보라“고 말씀하셨다. 사람을 식별시키기 위해서는 얼굴을 보라는 것이 상식이지만 예수는 자기를 대표하는 모습으로 손을 들었는데 그 손에는 십자가에 못 박혔던 못 자국이 있기 때문이다.

최초의 버마 선교사는 미국인 저드슨 씨(Adoniram Judson)이다. 불교 국가이므로 국왕에게 선교 활동 허락을 받으러 갔다. 왕은 그의 손을 보고 “내 나라 농민의 손과 비슷해지면 원하는 활동을 하시오.“하고 말했다. 저드슨 선교사는 2년 동안 농사를 짓고 거친 손이 된 후에 선교를 시작하였다.

국왕의 의도는 우리와 동거동락(同居同樂) 하는 것이 당신의 메시지가 되어야한다는 것이었다. 나의 손이 나를 천사로 만들 수도 있고 악마로 만들 수도 있다. 복음서를 읽으며 대단히 재미있는 것은 기자들이 예수의 손의 움직임을 섬세하게 관찰하고 있다는 점이다. 역시 누구를 표현할 때 그의 손이 대표적인 인상인 듯싶다.

지금은 사순절(四旬節 Lent), 참회의 계절이다. 예수의 고난을 묵상하며 자신을 참회하는 계절이다. 하나님이 가장 기뻐하는 것은 고백하는 사람, 고백하는 교회, 고백하는 백성이다. 인간의 기술과 재물로 높은 바벨탑을 쌓아도 하늘에 도달할 수 없다. 신의 진노를 잔잔케 하는 유일한 제물은 회개이다. 믿음을 내세우는 바리새인의 형식적인 기도 보다, 가슴을 치며 회개하는 세리의 기도를 예수는 받아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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