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자연은 자연 그대로

2014-04-11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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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병임(논설위원)

맨하탄의 북쪽 끝 약간 높은 언덕위에 자리한 클로이스터 뮤지엄 옥상에서 허드슨 강을 바라본 적이 있는가. 로마네스크 양식의 아치가 아름다운 사원에서 중세 수도원의 미술품을 보고 정원의 꽃과 허브의 향을 코끝에 간직한 채 야외 테라스에 올라보라. 툭 트인 하늘과 그 아래 펼쳐진 푸른 숲, 조용히 흘러가는 허드슨 강은 물론 이스트 강까지 건너다보면서 적막할 정도로 고요한, 속세를 떠난듯 한 대자연의 품을 느낄 수 있다. 봄은 연녹색 안개더미처럼, 가을은 또 불타는 단풍이, 아름다운 대자연 속에서 평화와 안식을 느낄 것이다.

그런데 이 뉴욕의 허드슨 강을 따라 뉴저지 쪽에 높고 낮은 절벽으로 형성된 유서 깊은 녹지대인 팰리세이즈 스카이라인이 지난 2012년부터 계속하여 화제가 되고 있다. LG전자 미주본사는 다른 건물들보다 4배 높은 143피트(8층 높이)의 빌딩을 뉴저지 잉글우드 클립스에 신축 중이다. 완공 후에는 건물 상단부가 숲 위로 튀어나와 천혜의 자연풍치가 망쳐질 것이라며 지역 주민들, 미 환경보호청, 전직 뉴저지주지사 4명, 환경운동가는 소송을 제기하기도 했다. 또 시민단체, 클로스터ㆍ테너플라이ㆍ데마레스터ㆍ해링턴 파크ㆍ알파인ㆍ라클리 등 6개 인근도시 시장들은 LG 신사옥 건물 높이를 낮춰달라고 요구하고 있다.


뉴욕뉴저지 환경단체연합회는 ‘LG가 팰리세이즈를 망치게 해선 안된다’는 사옥신축 반대 대형 빌보드 광고를 내세우는 한편 이 빌딩이 완공되면 제2, 제3의 고층건물들이 들어설 것도 염려하고 있다. 최근에는 앤드류 쿠오모 뉴욕 주지사에 이어 뉴욕 주 정치인들도 연이어 나서고 있다.

LG측은 2011년 신축 허가를 받았고 버겐카운티 고등법원이 원고 패소결정을 내려 법적으로 하자가 없다며 디자인 변경은 없을 것이라고 한다. 또 허드슨 강변에서 400미터 안쪽에 위치한 신사옥을 팰리세이즈 숲 조망과 연결시키지 말라고 하고 2,200명의 신규 고용이 창출되는 등 뉴저지 경제에 긍정적인 영향을 끼칠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런데 소수의 사람들 직장과 허가를 내 준 소도시의 지방세수가 크게 늘어날 것이라는 것 외에 인근 지역 주민을 비롯 수많은 이들의 공공이익을 희생시켜서는 안된다는 여론이 날로 커지고 있다.

이 땅에 이민 와 살고 있는 이민 1세로서 글로벌 한국 기업이 미국 땅에 자력으로 빌딩을 짓는다는 것이 자랑스럽다. 하지만 지역 주민들과 미국 주류사회의 결사적인 반대를 무릅쓰고 굳이 고층으로 올려야만 하는 것인지, 높이를 낮춰 옆으로 확장하는 융통성은 없는 것인지 잘 이해되지 않는다.

지난 수십년간 한인사회가 성장하면서 한국 기업도 함께 성장해왔다. 자동차를 비롯, TV, 냉장고, 밥솥 등의 가전제품, 화장품, 옷과 먹거리 등의 생활용품은 물론 한국계 은행과 보험 등을 이용하는 한인들이 많다.

모국에서의 입맛과 향수, 애국심을 상대로 한국 기업들이 비즈니스를 해왔고 대형 기업으로 커진 것은 사실이다. 그런데 미국에 진출하여 성공한 한국 지상사나 기업이 한인 커뮤니티 센터나 노인센터를 지어주었다든가 재정난에 허덕이는 한인회를 위해 거금을 쾌척했다는 소리 한 번도 못들었다. 하다못해 동포 자녀들을 위한 장학재단을 만들었다는 소식도 없었다.

이민자인 우리로서는 뉴욕타임스와 워싱턴 포스트, 레코드 지 등에 LG전자사옥 반대 기사와 광고를 자꾸 보는 것이 마음 불편하다.눈부신 햇살, 맑은 공기를 가르는 바람, 푸른 하늘을 높이 날아다니는 새, 가슴을 시원하게 뚫어주는 숲의 향기는 모든 사람의 것이다. 자연은 자연 그대로 남겨두어야 한다.

한국계 기업이 한인밀집지역인 도시마다 한인회관이나 노인센터, 한국학교를 지어 기증한다면 이 땅에 이민 와 사는 미주한인들의 위상이 얼마나 올라가겠는가, 또 모국이 얼마나 자랑스럽고 2세, 3세들에게 떳떳하겠는가 싶다. 하루빨리 좋은 해결책이 나와 LG미주본사 사옥 신축 문제를 매듭짓고 한인들에게 격려가 되는 소식을 고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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