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큰 꽃다발을 바칩니다

2014-04-07 (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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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병렬 (교육가)

“샌디 엄마, 좋은 소식 들었어요. 샌디 할머님, 할아버님께서 곧 오신다고...” “정말 기뻐요. 그래서 바쁘게 지냅니다” “그 분들이 오시면 집안일을 도와주실텐테... 천천히 하세요” “여기 사정을 모르시는데 뭘 도와주시겠어요. 내가 더 바빠지겠지요” 샌디 엄마는 두 분이 오시는 것이 좋기도 하고 겁도 난다. “바비 엄마, 요새는 통 뵐 수 없네요. 아무 일도 없었지요?” “제가 얘기를 안했군요. 일주일 전에 한국에서 혼자 사시던 시어머님이 오셨어요. 진작 모셔와야 했는데... 지금이야.” “잘 되었네요. 애들이 좋아하겠어요.” “아직은 말이 잘 통하지 않아서 불편하지만... 애들이 할머니를 아주 좋아하는군요.” “앞으로 많이 도와주실걸요. 잘 되었어요.” 전화를 끊은 바비 엄마는 어깨를 한번 올렸다 내리고는 세탁기의 문을 연다.

미국에 사는 한국 가정에 조부모님이 계신 댁이 많아졌다. 한 집에서, 혹은 아래 위층에서, 혹은 몇 집 건너서 따로 생활하면서 한 가족을 이루고 있다. 그런데 이런 사정을 쉽게 알 수 있는 사람이 한국학교 관계자이다. 매주 토요일 첫째 시간이 반쯤 지나서야 나타나던 어린이가 제 시간에 학교에 나타난다.


할머니 손을 꼭 잡고. 전보다 얼굴도 깨끗하고, 머리 모양도 단정하고, 옷맵시도 곱게 차려입은 송이가 나타났다. 할머니 얼굴을 쳐다보며 퍽 자랑스러운 모습이다. 또한 달라진 것은 숙제를 정성껏 하는 일이다. 교사가 놀라워하는 모습을 보고 송이가 말한다. “우리 할머니가 가르쳐 주셨어요.”

조부모님을 모시는 엄마는 힘들지 모르지만 자라나는 어린이들에게는 좋은 가정교사를 모신 것이다. 어린이들의 부모는 자녀 양육의 무거운 책임감 때문에 눈코 뜰 겨를도 없지만, 할머니와 할아버지는 느긋하게 어린이들을 사랑할 수 있는 시간과 마음의 여유가 있다. 그래서 호흡이 맞아 서로 아끼고 사랑한다. 어린이들이 할아버지나 할머니 손을 꼭 잡고 학교에 오가는 모습은 한국학교의 또 하나의 아름다운 그림이다.

하지만, 그들이 공부하는 네 시간을 지루하고 심심하게 기다리셔야 하지 않는가. 그것을 걱정하시는 분들에게 학교 견학을 권한다. 어른들이 할 일이 충분하다. 학부모 교실이 있어서 계속적으로 여러 가지 이론을 배우고, 실기를 익힐 수 있는 기회가 제공된다. 또한 자원봉사를 할 수 있는 기회도 있다. 제일 큰 즐거운 시간은 어른들끼리 서로 자유롭게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기회가 있다는 것이다.

미국에서는 바로 이런 ‘우물가’의 이야기를 교환할 자리가 없어서 마음의 병이 든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서로 마음에 부담을 주지 않는 소위 쓸데없는 이야기의 교환이 꼭 필요한 것이 사람 살아가는 방법이 아닌가.

하여튼 조부모님이 계신 댁 어린이들은 다른 데가 있다. 첫째, 인사를 차리는 습성 즉 인사성이 밝다. 누구하고나 만나고 헤어질 때 반드시 인사를 한다. 그것도 밝은 목소리로 상대방을 기쁘게 한다. 둘째, 한국말의 어휘가 풍부하다. 어떤 다섯 살 어린이가 ‘혼자’라는 말을 알고 있어서 놀랐다. 조부모님과 주고받는 말에서 배우니까 자연스럽다. 셋째, 한국적인 생활문화를 몸으로 익힌다.

숟가락 젓가락 사용이나, 옷고름 매기에 익숙하다. 그들의 조부모님을 살아있는 한국문화의 교과서인 까닭에 재미있게 이것저것을 배운다. 넷째, 한국계 미국인임을 자랑스럽게 깨닫는다. 한국문화가 다르다는 것이 결코 열등하다는 것이 아님을 깨닫는다. 이렇게 생활해보면 조부모님과 같이 생활하는 일이 퍽 다행한 일임을 알게 된다.

그들의 부모도 처음에는 어려워하다가 어느새 도와주시는 일에 감사하게 된다. 가정생활이란 가족의 공동생활이다. 이렇게 서로 돕게 되면, 기다리는 사람이 있는 가정에 돌아오는 일이 즐겁게 되고, 집안의 잡동사니가 소리 없이 정리 정돈되는 것을 감사하게 된다. 조부모님과 함께 생활하는 즐거움을 아는 그들은 행복하다. 특히 미국에서 자손들과 함께 생활하시는 조부모님들께 큰 꽃다발을 바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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