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소유대명사의 힘

2014-04-01 (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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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창만(목사)

“철학자들과 학자들의 하나님이 아니라,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그리고 당신의 하나님이 나의 하나님이 될 것이다.”(1654. 11. 23. 10-12.)

이 유명한 글은 파스칼이 죽은 후 친구들이 유품을 정리하다가 그의 양복 가슴 안쪽에서 찾아낸 메모리알이다. 파스칼은 그가 경험한 회심의 순간을 작은 종이에 적어 양복 가슴에 촘촘히 꿰매어 평생 지니고 다녔다. 파스칼이 소유대명사를 이처럼 반복적으로 사용한 이유는 소유대명사가 지니고 있는 중요한 의미와 기능을 그가 알았기 때문이다.파스칼은 자기가 믿는 하나님은 인격적인 하나님이라는 사실을 강력하게 변증하기 위해서 소유대명사를 반복적으로 사용했던 것이다.


야곱은 배고픈 에서를 음식으로 유인한 다음 장자권을 두 손에 넣었다. 거친 사냥꾼이었던 에서가 속은 것을 안 다음에 복수의 칼을 들고 야곱에게 달려들었다. 야곱은 부모 형제를 떠나 외삼촌 라반의 집으로 유랑의 길을 떠났다. 가던 길에 야곱은 벧엘에서 하룻밤을 유숙하게 되었다. 광야에서 홀로지내는 그 밤은 두렵고 외로웠다. 자신감으로 충만하던 야곱이 아닌가. 그러나 그의 실존 깊이 엄습하고 뒤흔들었다.

바로 그 순간이다. “나는 너의 조부 아브라함의 하나님이요, 이삭의 하나님이라”는 소유대명사로 시작되는 하나님의 따뜻한 음성을 들었다. 하나님의 현존 앞에서 야곱은 온 몸을 떨며 감격했다. 야곱은 평생 처음으로 하나님 앞에 무릎을 꿇었고, 간절한 마음으로 서원 기도를 드렸다. 기도의 내용은 조잡하기 짝이 없었다. 계산적이고 이기적이며, 하나님과 협상을 하는듯한 내용이었다. 그러나 놀랍게도 하나님은 이런 어처구니없는 야곱의 기도를 받아 주셨다.

무엇 때문인가. 무엇이 하나님의 마음을 움직였는가. ‘나의 하나님’(창 28:21)이라는 소유대명사 때문이다. 하나님보다 자신을 더 의지하고 이기적으로 사는 사람에게 나타나는 언어의 특징이 있다. 타자를 향해 ‘살아있는 관계’를 나타내는 소유대명사를 잘 쓰지 않는다.

잘 사용된 소유대명사에는 놀라운 힘이 있다. 그 안에서 인격이 변화 된다. 관계의 질이 바뀐다. 믿음과 신뢰가 싹트고 새로운 삶이 열린다. 남북전쟁으로 상처받은 국민의 마음을 치유한 명연설문으로 알려진 링컨의 게티스버그 연설문을 보라. 삼인칭 소유대명사로 가득하다. 거기에는 ‘내가’(I)라는 이기적 주어는 하나도 안 나온다. 인격의 글이란 원래 이런 것이다.

당신은 리더인가. 소유대명사 사용법에 눈을 떠라. 자고로 고도의 정신적, 영적 성취를 크게 이룬 사람들은 친밀한 소유대명사를 많이 사용했다. 종교 개혁가 마르틴 루터는 말했다. “많은 사람들이 소유대명사를 잘 사용할 줄 몰라 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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