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크림반도와 동아시아

2014-03-31 (월) 12: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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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옥세철 논설위원

“오바마가 마침내 러시아에 대한 제재를 선언했다. 그 제재선언이라는 것이 그런데 이렇게 들린다. ‘달리 옵션이 없다. 그러나 약하게 보이기는 싫다. 그럴 때나 하는 것으로.”

여전히 수려한 연설이었다. 민주주의, 시장경제의 개방성, 자유 등의 덕목을 강조했다. 그것도 빼어난 수사력을 동원해서. 지난 주 있었던 오바마의 브뤼셀 연설. 그 발언내용에 대한 내셔널 인터레스트지의 지적이다.

“마치 미스 아메리카 콘테스트에 출전한 미인들이나 할 소리를 자유세계 지도자가 하고 있다.” 보수우파의 기수 찰스 크라우트해머의 말이다. 엄혹한 국제정치 현실 파악능력이 없다는 혹평을 퍼붓고 있는 것이다.


‘별 내용이 없는 빈약한 연설이다.’- 뉴욕타임스도 한 마디 하고 나섰다. 그러면서 이런 비판도 가했다. ‘진부한 수사의 남발보다는 그동안 동맹을 소홀히 했다는 자성과 함께 동맹의 필요성을 강조할 필요가 있지 않았을까.’

사면초가의 상황이다. 무엇이 그토록 오바마를 궁지로 몰고 있는 것일까. 걸핏하면 ‘red line’을 설정한다. 그러나 말일 뿐 액션이 없다. 수사만 그럴 듯 하고 구체적 액션플랜이 없는 데 따르는 비판이다.

크림반도 사태에서도 마찬가지다. 오바마 대통령이 우크라이나 사태 설명을 위해 처음 대중 앞에 선 것은 지난 2월28일이다. 그는 성명을 통해 ‘미국은 우크라이나에 대한 어떠한 군사적 개입도 대가를 치른다는 점을 분명히 밝힌다’고 선언했다.

그러나 그 때는 이미 러시아 공격헬기가 우크라이나 국경을 넘었고 6000여 병력의 사실상의 러시아군이 크림반도로 들어온 직후였다.

이후 오바마 행정부는 ‘대가’란 말을 빼놓지 않았다. 그러나 우크라이나 사태는 불과 1개월 만에 ‘별 대가’를 치르지 않고 러시아의 완승으로 끝난 것이다.

“그 크림반도사태를 베이징은 상당히 고무적 상황으로, 도쿄는 비관적 상황으로 바라보고 있다.”

이어지는 내셔널 인터레스트지의 분석이다.


‘무력으로 국경선이 다시 그어진다’-. 과거 19세기에는 흔한 일이었다. 국가 간의 전쟁, 그것도 선진문명을 자랑하는 유럽국가 간의 전쟁은 20세기 말, 더욱이 21세기 들어서는 좀처럼 볼 수 없는 현상이었다. 그런데 초현실적인 사태가 벌어졌다. 푸틴 러시아의 그루지야 침공에 이은 이번 크림반도점령 합병이 그것이다.

이 사태는 그러면 세계의 어느 지역에 가장 큰 충격파를 불러올까. 유럽이 아닌 동아시아지역이라는 것이 이제 와서의 진단이다.

우크라이나는 나토동맹국이 아니다. 그러니 만일의 사태가 발생해도 미국이 전쟁에 개입될 가능성은 극히 적다. 미국의 개입 없는 유럽을 상정해 보자. 러시아의 위협은 지배적일까. 그렇지도 않다. 경제력에 있어 러시아는 독일과만 비교해도 상대가 안 된다. 유럽연합(EU) 전체와 비교하면 그 규모는 20%도 못된다.

아시아로 눈을 돌리자. 중국이 차지하는 비중은 지배적이다. 인구가, 경제력이, 또 군사력이 그렇다. 그 아시아에서 미국이 철수한다고 가정해본다. 유럽 같이 아시아의 민주체제 중소국들은 상호 협력 체제를 구축해 중국을 효과적으로 견제할 수 있을까. 그 가능성은 희박하다.

그런 현실에서 미국은 신뢰도를 상실해가고 있다. ‘양치는 소년의 외침’같다고 할까. 번번이 레드라인을 설정했다. 그 레드라인이 무시된다. 그래도 그 뿐이다. 핵 장난하는 북한에 대해서도, 화학무기를 사용한 시리아에 대해서도.

아시아회귀정책도 사실에 있어 말뿐이다. 중국의 패권주의에 대처한다. 그래서 취해진 정책이다. 그런데 구체적 후속 조치가 없다. 그 상황에서 벌어진 게 우크라이나 사태다. 미국은 새로 부상하는 중국에다가 또 푸틴의 러시아란 다른 가상의 적을 맞닥뜨리게 된 것이다. 그런 정황에서 미국의 안보 공약이 흔들린다면.

“일본이 우경화, 내셔널리즘으로 기우는 원인을 바로 여기서 찾을 수 있다.” 적지 않은 관측통들의 지적이다. 반대로 중국은 점차 자신을 가지고 모험주의적 행동에 나설 수 있다는 것이다. 다른 말이 아니다. 크림반도사태는 그 어느 지역보다 동아시아지역에 더 큰 충격파를 몰고 올 수 있다는 것이다.

“한국, 일본, 호주 등 아시아의 동맹국들은 결국은 양자택일의 궁지에 몰릴 수 있다. 중국의 세력권에 편입하든지, 아니면 자체 핵무기를 개발하든지….” 위클리 스탠다드지의 분석이었나. 그게 점차 일종의 컨센서스로 굳어지고 있는 느낌이다. 내셔널 리뷰도, 내셔널 인터레스트도 또 워싱턴 포스트도 약속이나 한 듯 같은 경고를 하고 있는 것이다.

크림반도에서 들려온 총성. 그게 동아시아 상공에 심상치 않은 검은 구름을 몰아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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