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완불!”

2014-03-21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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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출한 뒤 6,000달러의 수업료와 생활비, 그리고 대학 등록금을 내라고 부모를 고소했던 뉴저지의 여고생 레이철 캐닝(18)이 12일 집으로 돌아갔다. 18일 법원에 출두하여 소송 치하 의사도 밝혔다.

레이철은 지난달 10일 부모가 자신의 생활에 간섭하자 불만을 품고 집을 나간 뒤 소송을 냈었다. 지난 4일 재판 첫 심리에서 딸은 원고인석에, 부모는 피고인석에 각각 앉았고 레이철의 변호사는 ‘부모가 딸에게 무엇이 최선인지는 안중에도 없이 6,000달러를 절약하고 뜻을 관철하는데 더 관심이 있다’고 말했다. 레이철 부모는 ‘딸이 남자친구와 집을 나가 밤새도록 술을 마시는 등 속을 썩여 남자친구와 헤어지라고 요구했지만 말을 듣지 않았다’며 딸이 집으로 돌아오기를 바란다고 말했었다.

이날, 법원은 부모가 돈을 지급해야할 긴급한 필요성을 인정하기 어렵다고 판결했다. 판사는 잘못된 사례를 남길 수 없다며 부모의 손을 들어주었고 소송을 제기한 딸은 야단을 맞았다.


이에 사기가 꺾인 딸은 대학 등록금 문제를 판단하는 2차 심리를 앞두고 가출 후 머물던 친구 집을 나와 가족과 재결합 한 것이다. 레이철 부모는 딸이 돌아오자 따뜻하게 맞았다고 한다.
안그래도 수년전 뉴욕타임스가 미국의 부모와 성장한 자식간 관계가 다른 선진국에 비해 2배 이상 나쁘다는 연구결과를 발표한 일이 있다.

‘결혼과 자식’ 매거진이 5개 선진국 65세 이상의 부모 2,700여명을 대상으로 부모와 자식의 관계에 대한 국가별 차이점에 대해 조사, 미국인 부모 51%는 자식과 우호적인 관계인 반면 20%는 갈등관계를 유지하고 있다고 했다. 이 수치는 영국 3%, 전체 표본 평균치 9%에 비해 2배 이상 높다.

해피엔딩이 되어 천만다행인 이 뉴스를 보면서 미국에서 자녀를 키우는 한인부모들은 ‘부모 마음 다 똑같지’, ‘무자식 상팔자’, ‘평생 부모의 십자가’, ‘나의 애물단지’ 등등의 말을 떠올렸을 것이다.

자라면서 공부 안하고 딴 짓만 하여 부모 속을 썩이는 자녀, 어려서부터 말 잘 듣고 공부도 잘했지만 결혼을 앞두고 부모를 실망시키는 자녀, 부모와 자식 간의 문제는 잘났거나 못났거나 다 거기서 거기다.

분명한 것은 부모는 자식을 선택할 수 없고 자녀는 부모를 선택할 수 없다는 것이다. 마음에 안 든다고 바꿀 수도, 버릴 수도 없다. 부모는 자식에게 생명을 주었고 자식은 부모에게 삶의 기쁨과 보람을 주었으니 말 그대로 천륜(天倫)으로 맺어진 사이다.

부모와 자식 사이의 정답은 ‘일방적이 아닌 상호관계여야 한다’, ‘대화를 통해 문제를 해결하라’, ‘서로 신뢰하고 믿으며 원만한 관계를 유지하라’, ‘희생과 사랑, 기쁨으로 대하라’고 하지만 인생에 뭐 정답이 있던가.

부모와 자식간의 관계는 ‘전생(前生)에서의 빚’이라는 말이 있다. 자식이 속 썩이는 부모나 부모에게 불만을 품은 자식이나 전생에서 내가 진 ‘그 빚’을 갚는다는 것으로 생각하고 자신의 업보를 참회하는 마음으로 견뎌내야만 한다고도 한다.
만일 레이철이 인터넷에 뜬 ‘한 엄마가 쓴 글’을 읽었더라면 부모를 상대로 학비와 생활비 내라는 소송을 하진 않았을 것이다.

‘ 저녁 준비를 하고 있는데 아이가 부엌에 와서 뭐라고 쓴 종이를 주었다. 이번 주 내침대 정리 5달러, 가게심부름 50센트, 동생 봐준 값 1달러25센트, 쓰레기 버린 값 1달러, 좋은 성적표 받아온 값 5달러, 마당 쓴 값 2달러, 총 청구액 14.75달러. 한참 생각하던 엄마는 그 종이 뒷면에 썼다.


9개월동안 내 뱃속에서 너를 키운 값 공짜(No, Charge!), 아플 때마다 잠 못자고 간호하고 기도해준 값 공짜, 너를 위해 애쓰고 눈물흘린 값 공짜, 네 장래를 위한 염려 공짜, 네게 준 충고와 지식들 공짜, 네 학교 학비 공짜, 장난감ㆍ음식ㆍ옷ㆍ네 콧물 닦아둔 값 공짜, 다 더하면 나의 모든 사랑의 값은 공짜란다, 내 아들아. 엄마를 올려다보는 아이의 눈에는 커다란 눈물이 글썽이고 있다. 그리고 종이에 아주 크게 썼다. 완불!(完拂, full payment). ‘
부모와 자식 간의 관계는 정말 어떤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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