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운명을 바꾸는 작은 사건

2014-03-18 (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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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창만(목사)

알버트 슈바이처는 당대에 저명한 대학의 교수이며 철학자, 음악가, 저술가였다. 그런데 그가 누리던 부귀영화를 갑자기 내어 던지고 아프리카 오지의 의료 선교사로 투신하게 만든 작은 사건이 있었다. 슈바이처가 어렸을 때다. 동네 뒷골목에서 가난한 집 아이와 싸움이 붙었다.

키가 더 크고 힘이 셌던 슈바이처는 단숨에 가난한 집 아이를 넘어뜨리고 난 다음 두 손으로 목을 조르며 항복을 요구했다. 거의 항복을 받아낼 순간이었다. 밑에 깔려 허우적거리던 그 아이가 소리쳤다. “내가 왜 지는지 알아? 고기를 못 먹어서 그래. 나도 너처럼 고기를 먹을 수만 있다면 얼마든지 이길 수 있어.”


밑에 깔려 얼굴이 창백해진 가난한 아이가 비명처럼 외치는 그 한마디의 말이 슈바이처의 가슴을 쳤다. 슈바이처는 더 이상 싸울 마음을 잃었다. 그 길로 집으로 돌아왔다. “고기를 못 먹어서 졌다.”는 말 한 마디가 한동안 뇌리에서 떠나지 않았다. 몇 달을 운둔했고, 침묵했다. 고기를 입에 대지 않았다. 이 작은 사건을 통하여 슈바이처는 가난한 사람의 마음을 이해하는 이타주의자가 되었다.

청년이 되었을 때, 슈바이처는 삶의 대전환을 가져 올 또 하나의 사건을 겪었다. 어느 날 공원을 산책하고 있던 중, 흑인 노예가 무릎을 꿇고 눈물을 흘리는 동상을 보게 되었다. 동상을 바라보는 순간 슈바이처는 흑인들이 왜 같은 인간으로 태어나서 노예로 차별을 받아야 하는가를 묻게 되었다. 그때 그의 내면에 하나님의 음성이 들려왔다. “가난한 사람들이 모여 있는 아프리카로 가라.”

개인에게만 이런 일이 일어나는 것이 아니다. 국가와 민족도 마찬 가지다. 대표적 예가 스위스다. 스위스는 작고 왜소하다. 한 역사적 사건은 멀리 16세기 종교개혁 시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마르틴 루터와 장 칼뱅이 주도로 진행된 16세기 종교개혁 발발 직후, 구교 국가인 프랑스가 세차게 반발하며 위그노 종교 전쟁을 일으켰다. 더욱이 1572년 ‘성 바르톨로메오 축제일’에는 하루에 무려 3,000명을 학살하는 만행을 저질렀다.

이 일로 인해 수많은 신교도들이 프랑스의 박해를 피해 스위스로 피신했다. 그중 대부분이 칼뱅과 츠빙글리가 자리 잡고 있는 제네바로 들어왔다. 소수의 약자였던 그들은 호구지책으로 시계 수공업을 시작했다. 이때로부터 스위스 주민의 주 생계 수단은 시계 수공업이 되었고, 제네바는 세계 시계 산업의 거대한 메카가 되었다.

모세는 80세까지 실패자였다. 그때까지 되는 일이란 아무것도 없었다. 그는 애급의 왕자의 신분으로 화려한 왕궁에서 편안히 살았지만 사명감이 없어 실패자였다. 사명감이 없는 사람은 정체성이 빈약하다. 자기중심적이고 이기적이다. 그래서 실패한다.
어느 날이다. 이런 모세에게 사명감이 생겼다. 새 길이 열렸다. 호렙 산기슭의 떨기나무 불 가운데 나타나 그를 부르시는 하나님을 만났기 때문이다. 이 사건으로 인해 모세의 인생은 양자 역학적으로 도약했다. 운명을 바꾸는 신비 사건은 먼 곳에 있지 않다. 가까이 있다. 다만 눈치를 채지 못할 뿐이다. 마음의 문을 열라. 주변을 면밀히 살피라. 신비의 사건이 나의 삶속에 들어올 수 있도록.

아브라함 머슬로(Abraham Maslow)는 말했다. “자신의 삶을 성숙하고 생산적으로 꾸려 가는 사람에게는 그들을 그렇게 만들어 준 사건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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