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1달러짜리 피자

2014-03-17 (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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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정 <수필가>

나이를 먹는다는 것은 때론 부끄러움을 내려놓는 편안함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언젠가 42가 맨하탄에서 볼 일을 보다가 때를 놓치다보니 마땅히 점심을 먹을 곳을 찾지 못했다. 그러다 문득 언젠가 협회 친구 몇 분과 전시장에 가기 전 요기라도 하자고 들렀던 피자집이 생각났다.

1달러짜리 피자집은 언제나 줄줄이 사람들이 많았고 그 추운 겨울날 요기라도 하자고 차례를 기다리는 사람들이 결코 불쌍해 보이지도 오히려 따끈따끈한 피자 한 조각으로 끼니를 때우는 그들이 현실적이라고 생각했다.


그렇게 해서 나도 그 일행에 끼어 아무렇게 놓여 있는 의자에 앉아 피자를 먹으면서 “나도 아메리카나이즈가 되었네” 하며 언젠가 한국에서 먹었던 호떡 생각을 했는데 내가 잘 아는 미국인 조가 하는 말이 그 피자집이 맛있기로 유명하다고 한다.

사람은 때론 도전 의식에 용기도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내가 처음 이민을 가겠다고 나설 때도 미지의 세계 머릿속에서 상상으로 느낄 게 아니라 직접 가서 겪어보겠다는 용기 때문에 이민을 시도 했지만 틀에 박힌 고정된 마음을 버린다는 것은 어떻게 보면 불안하고 위태롭지만 그래도 새로운 도전은 생활에 전환점이 되었다.

그렇게 해서 이민 와서도 20여년 한 곳에서 살던 곳을 떠나 다시 뉴저지로 이사를 갈 때도 새로운 도전으로 미국교회를 찾아 갔다. 처음에는 말도 통하지 않고 아는 사람도 없는데 아니 영어 그 자체에 자신도 없는데 하고 망설였지만 언제까지 한인사회에 서성일 것인가 싶어 120년이 넘었다는 크고 고풍스런 교회를 찾아가니 성도가 약50명 정도로 조용하다 못해 썰렁했다. 그래도 중년은 훨씬 넘어 보이는 성가대도 있고, 가족적인 분위기로 오래전부터 부모님들이 다녔던 후예들이 다니고 있었다.

그런데 목회를 하시는 목사님이 이외로 동양인이라 놀랐는데 알고 보니 한국 목사였다. 그렇게 해서 지금까지 다니고 있지만 언어란 하루아침에 익힐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아직까지도 유치원 실력에 머물고 있지만 그래도 간단한 인사 정도로도 나에겐 여간 다행한 일이 아닌가 싶었다.

그런데 요사이 한국 연속극을 보면 아무리 흥행으로 만든 작품이지만 대단한 부자라고 호화스럽다 못해 사치한 행동은 뭔가 잘못된 느낌이 드는 것이 아무리 귀한 자식이지만 전철도 탈 줄 모르고 거리에 음식도 먹어 보지 못하다 못해 딴 세상에 사는 어느 나라 왕족의 자손인가 싶은 게 위태스럽다 못해 안쓰럽기까지 하다. 게다가 한 술 더 떠서 어머니들은 자식을 마치 기형아로 만들고 있는 것 같고 무엇보다 그에 대응하는 신부를 찾기 위해 밀고 당기는 내용을 보면 현실을 떠난 공해로 보이기까지 했다.

탈무드를 보면 자식은 물고기를 잡아주는 것보다 물고기를 잡는 방법을 가르쳐야 평생 잘 살 수 있다고 하는데 우리나라 문화가 요사이 어디로 흘러가는지 의아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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