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생기발랄’사랑방

2014-03-14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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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병임(논설위원)

최근 플러싱 한 교회내에 노인전용 까페가 문을 열었다. 노인들이 바둑과 장기를 두고 텔레비전을 시청할 수 있는 시설을 완비하였을 뿐 아니라 매주 생활 상담과 소셜 상담 전문가를 초빙해 상담 서비스도 제공한다고 한다.

지난 1월 퀸즈 플러싱 노던 블러바드의 한 맥도널드 매장에서 오래 머문다는 이유로 한인 노인들이 경찰에 의해 3차례나 쫓겨난 사실이 알려지면서 한인사회에서 맥도널드 불매운동이 벌어지는 등 큰 파문이 인 적이 있다.

이 사실이 ‘이민 온 한인노인들, 갈 곳 없어’로 한국까지 크게 알려지면서 젊은 세대들이 부모님을 푸대접 하는듯한 인상을 주기도 했다. 그래도 맥도널드에서 시간을 보내는 노인들은 사정이 나은 편이다. 새벽부터 늦은 밤까지 장사하는 아들 내외, 딸 부부를 위해 손자 손녀를 봐주고 살림을 대신 살아주며 집 문밖을 못나오는 노인들도 많다.
지금 노인 세대는 1940년~1950년 한창 나라가 어려운 시기에 태어나 자식에게만은 가난을 물려주지 않으려고 개미처럼 열심히 일했다. 낯선 땅에 이민 와서는 자식들이 이 땅에 뿌리박고 살게 하려고 제대로 잠 못 자가며 거친 노동일도 마다않은 이들이 대부분이다. 그렇다고 미국 사고방식을 지닌 자식들에게 노후를 기대하지도 않는다.


이메일과 카톡 친구들 중에 나이 드신 분도 있는데 노후생활 지혜와 덕목 30가지 또는 노인이 젊은이에게 갖추어야 할 예절 12가지를 수시로 받아 읽고 있다. 그중 몇 가지를 추려보면 입은 닫을수록 좋고 지갑은 열수록 환영받는다, 대접 받으려 말라, 참지 못하면 망령이 된다, 욕심을 부리지 말라, 청결하라, 용돈 정도는 벌어라, 내가 건강해야 가정이 평안하다, 집안과 밖에서 넘어지지 말라, 한 말 또 하면 잔소리가 된다, 모여서 남 흉보지 말라, 경로석에 앉지 마라, 젊은이 칭찬을 아끼지 말라, 독서와 취미생활을 하라, 화내지 말고 평상심을 유지하라, 양보하고 배려하고 봉사하라......

장년이나 노년에게나 다 새겨들을만한 말인데 여기에 강조할 것은 무언가 하나라도 배우라는 것이다. 아무리 경험 많은 노인이라도 배울 것은 많다. 평생 장사하면서 돈 계산하기 바빴던 분은 컴퓨터를 배워 자서전 쓰기, 족보 정리하기 등을 해보면 색다른 경험이 될 것이다. 서예나 한국 춤, 시조 짓기, 민화 그리기, 한국노래 등을 배우고 싶어도 강습비가 부담스러워 못 배운 이들은 전문가의 재능기부로 무료강습 기회를 갖게 되면 참으로 바람직할 것이다.

이번에 문을 연 ‘좋은 사랑방’이 곳곳에 설치되고 활발히 이용되려면 사랑방 문을 활짝 열어야 한다. 사랑방에 노인뿐 아니라 2세와 3세들이 모여 우리 것을 배우고 굳이 한인들만이 아닌 동네 인근의 백인, 히스패닉, 다른 아시안들도 와서 한국문화를 배우며 새로운 문화공간으로 태어나야 한다.

몸은 나이를 먹어도 마음만은 언제나 이팔청춘인데 노인들끼리 모인 조용한 공간보다는 유치부, 초등학생 아이들도 함께 들락거리는 ‘생기발랄’ 사랑방 문화가 도입되는 것도 생각할 만하다. 잠시 아이를 맡겨놓고 장보러가는 젊은이, 사랑방 한쪽에서 미끄럼 타다 넘어져 우는 아이의 앙앙거리는 울음과 아이를 일으켜 주는 노인의 너털웃음 소리가 함께 어우러지는 공간, 시끌벅적한 삶의 한복판에서 살아있음을 느낄 것이다.

한국에 평생 교사와 공무원으로 정년퇴직한 가족이 있다. 큰오빠는 1년 전부터 수채화를 배우고 있고 큰언니는 동양화를 배워 문화센터 회원들과 현대백화점에서 전시 중이고 작은오빠는 유화를 배우고 있고 작은언니는 서예전을 열 정도다. 평생 펜과 백묵을 들고 교단과 책상을 떠나지 않았던 이들이 평균연령 63세에 전혀 문외한인 새로운 미술의 세계에 빠지면서 별로 말이 없던 이들이 대화가 많아지고 그림을 바꿔보며 얼마나 즐거워하는지 모른다.

배우는 데는 나이가 없다. 새로운 지식과 정보를 제때 익히지 않으면 낙오자가 된다. 오늘따라 스마트폰을 능숙하게 다루는 노인이 멋져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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