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여왕의 눈물

2014-03-13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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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민(회계사)

이번 소치 동계 올림픽은 많은 이들에게 애절함을 남겼다. 마치 일세기에 한번 나올까 말까 하는 명화감상 뒤 따라오는 후유증처럼. 그것은 물론 피겨여왕 김연아 선수 덕분이다. 그 애절함은 단순히 형편없는 판정에 금을 빼앗긴 안타까움에서일까?

이번 김연아 선수의 연기는 짧은 시간 속에 자신의 각오를 그려 넣은 작품이었다. 2010년 밴쿠버에서 김연아는 선수로서 가장 영예로운 올림픽 금메달의 꿈을 이룬 후 은퇴를 선언했다.


우린 상상도 못할 어마어마한 시간의 연습 도중 빙판에 부딪치고 부상당한 몸과 마음에는 쉽게 표현하기 힘든 혹독한 고통이 늘 자리 잡고 있었을 것이다. 그러니 개인적인 업적을 이룬 후 그 고통으로부터 얼마나 벗어나고 싶었을까?

하지만 새 꿈이 그녀를 은반으로 돌아오게 만든다. 훌륭한 홍보대사 역할로 2018년 평창 올림픽 유치를 따내는데 혁혁한 공을 세운 김연아. 그녀의 어깨는 사명감과 책임감으로 무겁기만 했다. 밴쿠버에서 피겨스케이팅의 역사를 새로 쓴 그녀는 한국의 피겨 스케이팅이 평창에서 역사로만 기억될까봐 가슴이 저렸던 것이다.
이런 가슴 아픈 일을 방지하기 위해서는 후배 육성과 피겨스케이팅 계의 발전이 절실했다. 그래서 우선 코칭스탭을 모두 한국인으로 교체하고 세계 선수권 대회 우승에 목표를 걸었다.

소치 올림픽에서 연기 후 점수를 기다리는 김연아 선수 양옆에 한인 코치가 동석한 모습은 정말 자랑스럽고 보기 좋았다. 아무튼 선수 생활을 접었다 복귀한 후의 연습은 더 큰 고통을 주었지만 나라와 후배를 위해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은 오로지 이것이라는 생각에 아픔을 참고 고통을 견디며 세계 선수권 대회 우승으로 우리나라 소치 올림픽 행 티켓 석 장을 따내는 자신과의 약속을 지켰다.

이미 뻔 한 결과를 점치듯 애당초 소치 금에는 관심이 없던 김연아. 자신의 목표와 어긋난 국민들의 기대가 얼마나 부담스럽고 고독을 느끼게 했을까? 소치에서의 연기를 마지막으로 그동안 동고동락하던 경쟁자와의 이별은 또 얼마나 외로움을 느끼게 했을까? 이런 마음을 달래기 위해 선수로서의 마지막 무대를 가장 멋지고 완벽하게 장식하고 싶었을 것이다.
쇼트 프로그램의 배경음악은 자신의 외롭고 고독한 마음을 표현하듯 슬픈 곡조의 ‘SEND IN THE CLOWNS’를 선택했고 의상은 슬픈 곡조에 걸맞은 올리브 그린과 노란 색상의 드레스를 골랐다. FREE 프로그램은 ‘ADIOS NONINO’ 탱고 곡을 선택했다.

아무튼 화려한 금으로 마지막 무대를 장식하고 떠나는 모습 보다 장시간 누볐던 은반과 동색인 은메달을 목에 걸고 떠나는 모습이 더욱 멋지고 가치 있어 보인다. 이 우아하고 품위 있는 모습은 역사와 모든 이들의 가슴에 길이 남을 것이다.

그런데 김연아는 메달세리머니 후 인터뷰 중 뜨거운 눈물을 흘렸다. 어떤 의미의 눈물일까? 어이없이 금메달을 강탈당해서? 할 일을 다 한 후의 허탈감? 마지막 무대를 완벽하게 장식하고 떠나는 아쉬움? 아마 그 눈물은 본인도 이유를 모르고 자연스레 흘러내리는 눈물이었을 것 같다. 1세기에 한번 나올까 말까 하는 명화의 마지막 장면에 애절함을 주는 여왕의 눈물처럼.

건강에 위험할 정도로 여기저기 심한 고통이 많다는데 부디 회복해서 언제까지나 행복한 ‘여왕 윤아(QUEEN YUNA)’로 남아주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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