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푸틴주의, 그 위험한 판타지

2014-03-10 (월) 12: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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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옥세철 논설위원

국제정치를 주름잡았다고 해야 하나. 하여튼 지난 한 달 내내 스팟 라이트는 온통 그에게 쏟아졌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소치 동계올림픽 개막이 그 시작이었다. 오직 푸틴의, 푸틴에 의한, 푸틴을 위한 올림픽이었으니까.

인류의 평화축전이라는 소치 올림픽이 끝날 무렵 러시아군은 크림반도를 장악했다. 그 후 들려오는 소리는 온통 푸틴에, 푸틴주의(Putlnism), 그리고 러시아뿐이다. 그 뒤로도 질문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있다. 크림반도뿐만 아니라 우크라이나 동부지역도 점령하려는 것은 아닐까, 제2의 냉전시대를 맞은 것은 아닐까 등등의.

푸틴의 그림자가 짙게 드려지면서 반대로 그 존재감이 작아지고 있는 것이 오바마다. 도대체 무엇을 하고 있었나. 비난이 가중된다. 그러면서 오바마의 해외정책이 그 근간에서부터 흔들리고 있다는 지적이 잇달고 있는 것이다.


도덕성은 일단 별도로 치고, 엄혹한 국제정치 현실에서 미국이, 더 나가 서방이 한 방 맞았다는 거다. 과히 틀리지 않은 지적으로 보인다. 그렇지만 과연 그게 그렇기만 한 것인가.

‘푸틴은 함정에 빠져들었다’-. 반(反)야누코비치 시위에서, 축출, 과도정권 수립, 그리고 러시아의 크림반도 점령에 이르기까지 일련의 사태 과정에서 백악관 뒤안길에서 들려오는 소리다.

워싱턴의 외교적 무능을 스스로 변명하는 말로 얼핏 들린다. 그러나 사태의 본질이란 측면에서 볼 때 분명 일면의 진실을 말해주고 있다.

왜 푸틴은 우크라이나 사태를 일으켰나. 경제는 곤두박질치고 있다. 불만이 고조되면서 지지율은 떨어지고 있다. 벌써 통치 15년째를 맞는다. 2018년까지는 보장됐지만 그 이후에도 물러날 생각은 없다. 그런데 엘리트들마저 이완조짐을 보이고 있다. 뭔가 새로운 내러티브가 필요하다. 그 돌파구 마련으로 크림반도를 점령했다는 것이 이코노미스트지의 분석이다.

“위험한 판타지에 사로잡힌 인물이다. 때문에 푸틴 개인은 물론 러시아인에 전체에 불행한 결과를 가져올 수도 있다.” 뉴욕타임스의 토머스 프리드먼의 지적이다. “그는 전혀 다른 세상의 사람이다.” 우크라이나사태와 관련해 푸틴과 장시간 통화를 했다. 그런 후 내린 앙겔라 메르켈 독일총리의 결론으로, ‘왜 크림반도를 점령했는지’ 그 두 번째 설명이다.

‘소련붕괴를 20세기 최악의 지정학적 파국’이라고 했던가. 무엇을 말하나. 과거의 영광에만 사로잡힌 멘탈리티의 인간이라는 것이다. 존 케리 국무장관도 지적했듯이 21세기에 19세기 식 국제정치놀음에 집착해 있는 인물이 푸틴이고 푸틴주의인 것이다.

“두 가지 유형의 권위주의 지도자가 있다. 하나는 자유를 억제했지만 강력한 국가건설에 성공했다. 싱가포르의 이광요가 그 대표적 케이스다. 또 다른 유형은 자유를 억제한다. 그러나 그뿐. 뭔가 치적으로 내세울 것이 없는 유형이다. 무솔리니 같은 인물이다.”


월터 러셀 미드의 분석이다. 푸틴은 후자의 유형으로 ‘실패국가 건설자’로 역사에 남을 공산이 크다는 것이다. 푸틴은 러시아를 막다른 골목으로 몰아가고 있다는 말에 다름이 아니다.

크림반도 점령도 그렇다. 소련식 도발로 우크라이나인의 마음과 영혼을 상실했다. 한 달 전만 해도 친 러시아, 친 서구로 양분돼 있던 우크라이나인들을 오히려 하나로 뭉치게 했다. 예정수순대로 크림반도 병합에 성공해도 상처뿐인 성공이 될 수밖에 없다는 이야기다.

여기서 새삼 제기되는 것이 백파이어(backfire)의 가능성이다. 루블화 가치가 떨어진다. 주가지수가 두 자리나 빠졌다. 자본의 대대적 해외탈출 상황도 배제하지 못한다. 벌써부터 그 조짐이 보이고 있는 것이다.

‘러시아의 운명은 정해졌다. 그것은 파멸의 길이다.’- 위대한 러시아, 유라시아연합의 꿈은 신기루일 뿐 그 장기적 전망은 지극히 어둡다는 것이 상당수 전문가들의 하나같은 전망이다.

원유와 천연가스 수출이 경제의 전부인 나라가 러시아다. 과거 소련은 원유가가 폭락하면서 붕괴했다. 세계의 에너지시장이 미국의 셰일시추개발과 함께 공급과잉 상태를 맞을 조짐이다. 에너지가격 급락과 함께 러시아는 또 한 차례 파멸의 운명을 맞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

거기에 또 하나. 특히 심각한 문제는 급감추세의 인구다. 지난16년 간 사망자수는 신생아 수를 1240만이나 더 많은 것으로 집계된 것이다.

이 같은 현실을 외면한다. 그리고 추구하는 것이 ‘러시아제국 영광’의 재현이다. 그것도 마피아식 철권통치를 통해. 이를 도대체 어떻게 보아야 하나. “푸틴주의는 러시아 자체에 큰 위협이 되고 있다. 그 푸틴주의가 이제는 세계평화를 위협하고 있다.”

프리드먼의 계속된 지적으로, 그 푸틴의 도발을 인간성(human nature)에 대한 도전으로 간주했다. 유럽연합(EU)으로 상징되는 자유를 염원하는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국민들. 그 인간성을 억누르려는.

그 푸틴주의를 서방은 강력히 응징하고 나설까. 워싱턴의 움직임이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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