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미주한인들의 힘

2014-03-07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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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병임(논설위원)

미국 버지니아주 공립학교 교과서에 ‘동해(East Sea)’와 일본해(Sea of Japan)’ 병기 의무화 법안이 5일 의회 절차상 최종관문을 통과하는 쾌거를 이루었다. 버지니아주 하원은 이날 전체회의를 열어 동해병기 법안(SB 2)을 찬성 82, 반대 16으로 가결처리했다.

버지니아 주는 주지사가 회기 종료(8일) 일주일 이내에 통과된 법안을 30일 이내에 서명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이에 테리 매콜리프 주지사는 4월초까지 법안에 서명할 것으로 보인다.
그동안 일본측의 로비로 법안 처리가 무산되느냐, 주지사가 마음을 바꾸느냐 등 많은 우려가 있었다. 주지사 서명을 확인하기까지 마음을 놓을 수 없으나 서명이 끝나면 법안은 7월부터 발효되며 이 법안에 따라 버지니아주 교육위원회가 승인하는 모든 교과서에 ‘일본해’가 언급될 때는 ‘동해’도 함께 소개되어야 한다.


미주 한인들은 이번 법안 통과에 힘쓴 버지니아주 한인들에게 큰 박수를 아낌없이 보내자. 한국의 정치인들이 각자의 이해를 위해 피투성이가 되어 싸우는 동안 미주 한인들은 조용히 역사에 남는 일을 해내었다.
1965년 획기적인 새이민법이 제정되고 1968년 새이민법이 발효되며 미 전역에 한인들이 대거 몰려왔고 지역 한인회가 생기고 비즈니스가 활성화되며 새로운 땅에 뿌리를 내리기 시작했다.

미국에 올 때 탄 비행기 티켓은 친지가 돈 모아 사주고, 본인이 수년간 힘들게 모으거나 빚을 내어 왔으며 공항에 내릴 때 주머니에는 달랑 50달러, 많아야 수백 달러였다. 잠 못자며 힘들고 거친 일을 하고 목숨 걸고 장사 하여 번 돈으로 자녀들을 아이비리그에 보냈고 집을 샀고 차를 샀다.

1960년대에 온 이들은 라면 두 개 끓여서 열 식구가 나눠먹는 배고픔이 싫어서 이민의 기회가 생기자 미련없이 조국을 떠난 이도 있을 것이다. 1970년대에 온 이들은 공장에서 재봉틀 돌리며 ‘별이 빛나는 밤에’의 송창식, 윤형주 노래를 위안삼아 날밤을 새웠지만 누런 봉투 안에 든 지폐와 찰랑 찰랑거리는 동전까지 다 털어도 방값, 차비에 쌀 한말 들여놓으면 흔적도 없어지는 지독한 가난이 싫어서도 왔을 것이다.

물론 김지하의 시 ‘오적’의 ‘서울이라 장안 한복판에 다섯 도둑이 모여 살았겄다. 재벌, 국회의원, 고급공무원, 장성, 장차관이라 이름 하는, 간땡이 부어 남산하고 목 질기기가 동탁 배꼽 같은 천하흉도 오적의 소굴이렸다’는 대목에 ‘아, 희망 없는 이 땅을 떠나자’ 한 이도 있을 것이다.

가난한 나라에서 다같이 못사는 것보다 잘 살고 싶고 자녀교육을 위해 미국에 왔으나 미주한인들은 한시도 두고 온 나라를 잊지 않았다. 모국에 홍수나 가뭄이 들면 수재의연금, 가뭄기금을 모았고 1997년 한국의 IMF시대에는 달러 보내기 운동을 펼쳤고 지금도 명절이 되면 엄청난 액수의 달러가 송금된다. 그러나 한국에서는 ‘저만 잘 살려고 모국을 버렸다’며 배신자로 취급하고, 한국이 잘 살게 되면서 은연 중 한국 TV 드라마에 나오는 미주교포는 사기꾼으로 묘사되는 등 푸대접을 받기도 했다.

그러나 미주한인들은 영주권을 받고 시민권을 받아도 마음만은 영원한 한국인이다. 우리는 소치올림픽에서 김연아가 금메달 따기를 학수고대했고 월드컵에서 한국팀을 밤새워 응원한다. 상대가 알아주든 말든 모국을 향한 ‘짝사랑’을 포기하지 않는다. 이번에 이런 한인들이 미주한인 이민사에 남을 일을 해낸 것이다. 버지니아 의회에 동해 병기 법안이 제출되고 통과되기까지 이들은 힘을 길렀다. 유권자 등록을 하여 표 한 장의 무서움을 미국 정치인들에게 보여주어 그들을 꼼짝 못하게 만들었다.

이번 버지니아 쾌거에 이어 뉴욕주와 뉴저지주의 동해병기 추진도 좋은 결과를 이루기 고대한다. 한인 유권자의 수가 많을수록 역사를 바로 잡는 일이 쉬워진다. 250만 미주한인들의 힘이 미치는 미국 정치가, 동해 병기 운동이 확산되면 한반도 통일까지 가져올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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