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기자의 눈/ 청소년 도박에 대한 단상

2014-03-07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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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지하(사회1팀 기자)

지난 몇 년 사이 도박 문제를 상담하기 위해 청소년 선도기관인 유스 앤 패밀리 포커스를 찾는 한인 청소년과 부모가 크게 늘었다고 한다. 일반적으로 도박 문제는 전체 상담의 20% 수준이었지만 최근에는 절반에 육박할 정도로 급증했다는 것이다.
또한 상담을 의뢰하는 학생들도 예전엔 ‘문제아’들이 대부분이었지만, 이젠 이름만 대면 모두가 알법한 고등학교에 재학하는 소위 ‘모범생’들도 자주 보인다는 게 유스 앤 패밀리 포커스의 설명이다.

이같은 청소년 도박 문제는 어디서 기인하는 걸까. 전문가들은 무엇보다 인터넷상에 판을 치고 있는 불법 도박사이트들을 꼽고 있다. 얼마든지 부모들 몰래 언제 어디서나 접속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대부분 처음에는 용돈을 조금씩 투자하다가 나중엔 부모의 지갑에도 손을 대는 게 일반적인 수순이라는 것이다.


더 큰 문제는 어른들 사회에서나 볼 수 있었던 사설 도박장, 일명 하우스까지 학생들 사이에서 암암리에 성행하고 있다는 점이다. 정확한 추산은 어렵지만 일부 학생들의 말을 빌리자면 신원이 확실한 사람만 입장이 가능한 한인 고교생과 대학생들만을 위한 전용하우스가 곳곳에 존재한다. 이처럼 낮아지고 있는 진입장벽이 청소년 도박 급증의 직접적인 원인이 되고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진단이다.

그렇다면 인터넷 사이트 접속이나 하우스 접근자체를 막으면 문제가 해결될 수 있을까? 전문가들은 단호하게 아니라고 답한다. 그 대신 청소년들이 바라보는 도박에 대한 시각이나 인식을 먼저 짚어봐야 한다고 강조한다. 청소년들은 예전의 어른들 만큼 도박을 그리 나쁜 것으로 인식하지 않는 경우가 많고, 이런 이유 때문에 청소년들이 도박을 더 쉽게 받아들이고 있다는 분석이다.

도박사들의 이야기를 다룬 영화나 드라마가 언제부턴가 매우 자연스러운 게 돼 버렸다. 올인, 타짜 등 한국 드라마와 영화는 물론 라스베가스 카지노에서 블랙잭을 하는 메사추세츠 공대(MIT) 학생들의 이야기인 ‘21’까지. 거기에다가 어느 시점부턴 일반 스포츠 채널까지 포커 게임에 스포츠라는 가면을 씌워 박진감 넘치는 중계를 하고 있다.

수십 년 전만해도 도박과 연관 지을 수 있는 말이 ‘패가망신’이였다. 그만큼 당시 사회분위기는 도박을 위험한 것으로 단정하고, 그렇게 교육했다. 그런데 이런 분위기가 지금은 많이 달라졌다. 미디어의 영향이 작진 않다고 본다. 상담기관을 찾은 도박 중독 학생들 역시 뒤늦게야 이 같은 도박의 병폐를 깨달았을 것이다. 인생의 소중한 것들을 이미 놓친 후에야 ‘비로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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