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힐링(Healing) 처방

2014-03-06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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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살아 가면서

▶ 강 신 용

긴 밤 내내 빗소리에 행복하다. 이른 아침 창밖으로 보이는 가로수는 새 옷으로 단장한 듯이 깨끗한 차림이다. 길가에 세워진 차의 지붕 위에 구슬처럼 물방울이 가득하다. 오랜만에 창가를 두드리는 빗소리가 정겹게 느껴진다. 남가주는 물이 귀하고 건조한 사막같이 무더운 지역이다. 수십년 만의 가뭄이란다. 가뭄에 단비가 내리니 너나 할 것 없이 비가 왔다고 서로 인사하며 반긴다.

빗소리에 야채가 부쩍 자랐다. 뿌리마다 깊숙이 파고드는 단물을 먹고 상추며 쑥갓 그리고 양귀비가 마당 한쪽에 가득해 보인다. 가문 날씨에 두껍고 메말라 죽은 줄만 알았던 나뭇가지에서 연한 새순이 돋기 시작했다.

곡식은 농부의 발소리를 들으며 자란다고 한다. 천성이 부지런한 탓에 한 번 더 돌아보니 민들레며 토끼풀 그리고 잡초들도 눈에 띄게 많이 자랐다. 긴긴 가뭄에도 깊이 뿌리를 내린 잡초를 뽑아냈다. 비오는 날마다 잡초를 솎아 냈으니 한해 농사는 잘 될 것만 같다.


빗물도 하늘의 자연 현상이다. 세상이 바빠지고 복잡해지고 사나워지고 있다. 컴퓨터와 스마트 폰이 나오면서 문화가 바뀌고 있다. 개인이나 지역이나 세계의 소식과 정보가 홍수를 이루고 있다. 시간과 공간이 바뀌고 뒤집히는 자연 파괴현상이 일어나고 있다. 정신없이 살다 보니 자신을 돌보지 못하고 산다. 파괴된 자아 속에 병든 자신을 발견하는 세상이다. 자연 앞에 허망한 인간을 본다. 자연의 섭리는 인간의 본성을 회복하게 도와준다.

강아지도 한 식구로 여기는 세상이다. 강아지가 아버지보다 가족 순위에서 더 높다고 한다. 농담으로 1순위는 자녀, 2순위는 엄마, 그리고 3순위가 아버지라고 한다. 강아지의 실례(용변)는 용서해도 아빠의 실례는 절대로 용서할 수 없다. 강아지가 힘들면 해결해도 아빠는 참아야 한다. 자연스런 강아지의 몸짓에 편안한 사랑이 있기에 식구처럼 느낄 수가 있다. 요즘의 강아지는 더 이상 방범용이거나 보신용이 아니라 행복을 주는 힐링 치료사 역할을 하고 있다.

미국생활 수십년에 눈치코치만 남았다. 척하면 삼천리고 툭하면 옆집 호박 떨어지는 소리라는 우스갯소리가 있다. 낯설고 물 설은 이민생활에 돈 없고 영어도 못하던 시절, 눈치코치로 산 세월도 웬만큼 흘렀다. 금이야 옥이야 아이들 키워 놓으니 저만 잘난 줄 알고 부모 알기를 우습게 아는 가족들을 많이 본다. 아빠는 한국말로 아들은 영어로 잘도 이야기한다. 결국 아빠의 화난 육두문자에 부자간에 갈등만 깊어 간다. 소통이 없다. 아픔만 남는다. 이제 서로 배려하고 존중하는 눈치코치가 필요하다.

누구나 힐링 처방이 필요하다. 새크라멘토에 사는 형제 같은 친구가 내려왔다. 일주일 동안 LA에서 건강 세미나에 참석차 왔다. 여러 아픈 교우들과 등산도 함께 가고 박장대소 웃음을 가르치는 멋진 친구다. 자연에 가까이 갈수록 마음의 상처를 치료하는 효과가 있는 것 같다. 아침마다 운동하며 땀 흘리고 소리치고 박수치는 것도 힐링의 처방으로 나에게는 효과가 좋은 것 같다.

5분 간의 죽음 체험 연습이 있다. 깜깜한 관 속에서 흰 천을 덮고 빈 몸으로 누워 5분간 죽음을 체험하면 많은 것을 느낀다고 한다. 가진 것은 마음 하나뿐이고 관 밖의 어떤 것도 소유할 수 없다는 것이다. 관에서 나온 체험자들은 정성을 다하여 살지 못한 것을 후회한다고 한다. 영험한 힐링 처방은 자신을 사랑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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