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올림픽과 삼일정신

2014-03-03 (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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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효섭 (아동문학가/ 목사)

동계 올림픽이 막을 내렸다. 올림픽의 의미는 메달에 있지 않다. 인류 사회가 한 자리에 모여 평화를 만끽하는 축제라는 점에서 70 개국이나 되는 많은 나라가 참가하였을 것이다. TV로 구경하는 사람까지도 마음이 하나가 되는 환희의 마당이 올림픽이다.

기미년 3월 초하루 조선반도를 뒤덮은 만세운동이 일어난 지 벌써 95년이란 세월이 흘렀다. 해 마다 삼일절을 지키지만 공휴일이란 것 이외에 그것을 국경일로 삼은 깊은 의미를 되새기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1919년 3월 22일 조선총독부는 선교사 대표 아홉 사람을 초청하여 긴급 좌담회를 열었다. 와타나베 조선 최고재판소장, 고꾸부 법무국장 등 총독부 고위 관리들이 나오고 선교사 대표로는 감리교의 웰치 감독과 장로교의 마펫, 게일, 노불 선교사 등이었다. 만세운동을 기독교와 천도교가 주도한 이상 이 운동의 근본원인을 분석해서 재발을 막자는 것이 모임의 취지였다.

이 회의에서 선교사들이 일본인들에게 진술한 것은 “조선인은 그 정신세계가 물질세계를 압도한다.”는 것이었다. 게일 선교사의 주장을 요약한다. “나는 30년 동안 조선인의 마음의 세계에 들어가 보려고 애썼으나 아직도 나는 구경꾼 정도이다. 조선인은 육신이 편해도 마음이 편치 않으면 육체의 위안은 큰 문제가 안 된다. 그들의 정신세계는 고대문화로부터 이어져 왔고, 작용이 복잡하여 나는 조선인의 정신세계를 매우 존경한다.”

선교사들이 분석한 조선인은 굶어도 떳떳하고 정의를 따라 사는 것이 그들의 가치관이므로 잘 살게 해 줄테니 굴종하라는 통치 방법은 조선인에게 먹혀 들어가지 않을 거라는 압력을 일본인들에게 가하였던 것이다. 기미년 만세운동은 정의가 강 같이 흐르고 사람이 사람답게 대접 받는 인간 해방의 운동이었다. 이 가치관은 오늘날 남북한 모두에게 절실히 요구되는 삼일정신이다.

의인(義人)이 된다는 것은 단순한 두 가지를 생활에 옮겨 실천하면 된다. 하나는 악과 부조리, 사람을 괴롭히는 사태를 고발하는 용기이고, 다른 하나는 “아무도 절망 앞에서 굴복하지 말라. 지금도 희망이 있다!”라는 메시지를 목청이 허락하는 한 큰 소리로 외치는 것이다.

일본 아베 정권의 우경화(右傾化) 움직임에 가속도가 붙고 있다. 70년 전, 곧 해방 직후 조선 사람들이 노래처럼 읊었던 단순한 말이 있었다. “소련에게 속지 말고 미국을 믿지 마라. 일본이 일어난다. 조선 사람 조심하라.” 불행하게도 그 말이 현실이 되어 일본의 재무장은 염려스러울 정도로 극대화하고, 독도 영유권을 주장하는 아베 정권의 움직임은 도를 넘어서고 있다. 사실 일본은 침략을 일삼고 전쟁을 쉬지 않았던 호전적인 역사를 가진 백성이다.

평화를 나타내는 한자는 세 가지가 있다. 和(화)는 입(口) 속에 밥이 있다 (禾는 벼 화)는 구상으로 경제적인 평화를 말한다. 安(안)은 집안에 여자가 있다는 구상으로 사회적 평화를 나타낸다. 平(평)은 심장 두 개가 나란히 공존하는 구상으로서 평화의 이념을 나타낸다. 이는 평화를 가지려면 네 마음과 내 마음이 동등한 입장에서 사이좋게 공존해야 한다는 옛 사람들의 지혜를 보여주는 말이다.

지난 3000년 동안에 세계에는 약 3,300회의 전쟁이 있었다고 한다. 1년에 한 번씩 싸운 폭이다. 왜 전쟁을 할까? 흔히 ‘다섯 P의 욕망’ 때문이라고 말한다. 과시의 욕망(passion for pageantry), 소유의 욕망(possession), 보호의 욕망(protection), 이익의 욕망(profit), 애국의 욕망(patriotism) 이다.

이제 인류에게는 여섯 번째 P가 절실하다. 그것은 평화에의 갈망(passion for peace)이다. 평화는 무력으로 건설 되는 것이 아니다. 평화를 갈망하는 마음과 마음이 연결되어서 이루어진다. 올림픽 정신이야 말로 세계평화의 정신이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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