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사마리아와 땅 끝

2014-02-26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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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주영(주필)

미국이민 초기 유대인의 공동체 시나고그 및 각 교회들은 새로 오는 이민자들을 돕는 일을 주로 해 왔다. 그리고 어려운 사람의 보호처가 되어 정착에 필요한 모든 정보 및 교육의 소스이자, 이민생활의 갈등과 문제해결을 돕는 교회로서 목사관도 함께 있었다. 그렇게 해서 이민세대가 무사히 생을 마치면 장례를 치러주곤 했다.
한인사회에서도 이런 일을 해야 할 곳이 바로 교회이다. 한인들 대부분이 교계를 중심으로 살아가고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상당수 한인들이 매주 열심히 헌금한 돈으로 운영되는 교회가 주중에는 한인들과는 전혀 상관이 없는 듯 굳게 문이 잠겨져있는 곳이 대부분이다.

최근 맥도널드나 버거킹 같은 곳을 찾는 한인노인들이 많다 보니 업소측과 노인들 사이에 외면하기 어려운 사건들이 심심찮게 일어나고 있다. 노인들이 너무 오래 머물러 있다 해서 쫓겨나 물의를 빚는 가하면, 노인을 장시간 기다리게 했다 해서 생긴 시비로 업소측 종업원이 대걸레로 노인의 손을 내리쳐 종업원이 경찰에 체포되는 사건도 일어났다. 이를 접하면서 유대인의 시나고그가 생각나는 것은 한인커뮤니티내 수많은 교회가 그와 같은 일을 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서다.
한인교회는 지금 대다수가 커뮤니티 문제는 외면하고 해외선교에 집중하고 있는 현실이다. 교회는 먼저 눈앞의 문제부터 해결하고 나서 먼 곳을 내다봐야 옳지 않을까.


교회들은 대개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가서 내 증인이 되리라’는 성경구절을 들어 마치 무슨 경쟁이라도 하듯 해외선교에 열을 올리고 있다. 이는 성서에서 말하는 핵심과는 맞지 않는다고 본다. 신명기에는 예루살렘 성전에 가서 제사를 지내라고 하였다. 제사가 끝나면 제사음식을 당시 사회에서 가장 소외된 고아나 과부, 이방인들과 함께 나누어 먹었다. 즉 하나님에게 드리는 제사를 통해서 소외 계층이 굶지 않고 연명해 나갈 수 있도록 배려가 된 것이다.

‘땅 끝까지 가서 내 증인이 되리라’는 구절은 공동체 밖 가난하고 소외된 계층을 위해 사역하라는 개념상의 의미가 아닐 런지$ 먼 곳부터 가서 선교사업을 하라는 뜻만은 아닐 것이며, 현실과 동떨어진 곳에서 힘들게 살아가는 사람은 누구나 할 것 없이 다 구원하라는 뜻으로 보는 것이 더 맞지 않을까 싶다. 노인들이 딱히 갈 곳이 없다 보니 이민족 사회에서 이리 저리 푸대접받거나 문제를 야기시키는 현실을 언제까지 두고만 볼 것인가.

현재 기독교는 기둥이 되는 성서내용의 사실여부에 많은 도전을 받고 있다. 미국의 생명과학자 J. 그레그 벤터가 실험실에서 인조생명체를 창조함으로써 인간이 신의 영역에 가까이 접근했고, 과학계와 천문학계는 지구 외 외계에도 생명체가 존재한다고 확신하고 있는 상태이다.

또 성경 원본에 해당하는 사해복음서 발견, 영화감독 제임스 카메론이 제작한 예루살렘 남부에서 발견된 동굴 무덤속 세계의 관이 예수와 어머니 마리아, 그리고 막달라 마리아의 것이라는 가설의 기록영화 ‘잃어버린 예수의 무덤(The Lost Tomb of Jesus)’과 영화감독 심차 자코보비치의 고고학적 물증을 바탕으로 한 기록영화 ‘예수의 무덤(The Tomb of Jesus Christ Discovery)’으로 부활의 역사적 진위가 도전을 받는 등 교계는 어려운 길을 걷고 있다.

하지만 성서의 가르침만은 인류를 구원하는 인류 최초의 가치이자 진리임엔 틀림없다. 핵심은 ‘이웃사랑’과 ‘빈민구제’ 이다. 요즘 한인사회에는 일부 교회내 불협화음이 심각해 보인다. 사랑과 구제의 본산지여야 할 교회가 내부의 갈등과 충돌로 그 귀한 뜻이 퇴색되고 있다.

교회가 본연의 가치를 찾으려면 우선 어려운 이웃을 보살피는 일부터 신경을 써야 한다. 특별히 초기교회의 기둥역할을 해온 우리사회의 노인세대에 문을 활짝 열고 예수사랑을 실천 할 때 교회의 부흥은 물론, 한인사회도 더욱 밝고 아름다워지지 않을까. juyoung@korea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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