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매향(埋香)

2014-02-24 (월)
크게 작게
김창만 <목사>

알지도 못하는 먼 미래의 후대를 위해 참나무 토막을 내어 개펄에 묻는 초시간적 초 이기적 계대(繼代)행위를 매향(埋香)이라고 한다. 예로부터 매향을 하는 사람들은 깊은 산 계곡의 맑은 물이 흘러 내려가 바닷물과 만나는 검푸른 개펄 깊이 참나무를 묻었다.

개펄 깊이 묻힌 참나무가 수백 년 혹은 수천 년이 흘러, 묻은 사람과 이를 꺼내어 쓰는 사람과의 뜨거운 정신적 교류가 이루어져 감격할 때 그 향은 최고의 침향(沈香)이 된다. 그리고 그 침향이 얼마나 고귀한지 금값보다 더 비싸다.개펄에 참나무를 묻는 사람은 자신이나 자신의 후손들을 위하여 그 일을 하는 것이 아니다. 그들은 그 혜택을 입을 사람이 누군지 알지도 못하는 먼 미래의 낯선 후대를 바라보고, 겸허하게 참나무 토막을 허허한 개펄에 묻는 것이다.


마치 도스토예프스키의 <죄와 벌>에 나오는 이름 없는 작은 소녀 소냐가 낯선 라스콜리니코프에게 아름다운 마음을 묻었듯이-. 그렇다. 매향을 하는 그들의 행위는 실로 순수한 계대(繼代)의 행위였고, 계산을 따지지 않는 이타적 봉사였다.
시인 서정주의 제6시집 <절마재 신화>에 ‘침향’이라는 시가 나온다.

<침향(沈香)을 만들려는 이들은, 산골 물이 바다를 만나러 흘러내려 가다가 바로 따악 그 바닷물과 만나는 언저리에 굵직굵직한 참나무 토막들을 잠거 넣어 둡니다. 침향은 물론 꽤 오랜 세월이 지난 뒤에 이 잠근 참나무 토막들을 다시 건져 말려서 빠개어 쓰는 겁니다만, 아무리 짧아도 2-3백년은 수저(水底)에 가라앉아 있은 것이라야 향내가 제대로 나기 비롯한다 합니다. 천년쯤씩 잠긴 것은 냄새가 더 좋굽시오.

그러니 질마재 사람들이 침향을 만들려고 참나무 토막들을 하나씩, 하나씩 들어내다가 육수(陸水) 조수(潮水)가 합수(合水)치는 속에 집어넣고 있는 것은 자기들이나 자기들 아들딸이나 손자 손녀들이 건져서 쓰려는 게 아니고, 훨씬 더 먼 미래의 누군지 눈에 보이지도 않는 후대들을 위해섭니다. 그래서 이것을 넣는 이와 꺼내 쓰는 사람 사이의 수백, 수천 년은 이 침향 내음새 꼬옥 그대로 바짝 가까이 그리운 것일 뿐, 따분할 것도, 아득할 것도, 너절할 것도, 허전할 것도 없습니다.>

사울이 죽은 후 이스라엘의 왕이 된 다윗에게 한 가지 소원이 있었다. 하나님의 성전을 건축하는 일이다. 그런데 하나님은 이 일을 다윗에게 허락지 않았다. 사람의 피를 많이 흘렸기 때문이다. 하지만 다윗은 낙심하지 않았다. 자신이 직접 성전을 지을 수는 없지만, 아들 솔로몬과 후대 백성들이 성전을 잘 지을 수 있도록 준비했다.

다윗은 자신만의 명예나 업적을 생각하는 그런 좁은 리더가 아니었다. 절마재 사람들이 먼 훗날의 후대를 바라보고 매향을 하듯이, 다윗은 이스라엘의 후손을 위하여 자신을 아낌없이 희생하는 삶을 살았다. 후대를 위한 다윗의 성전건축 준비는 완벽에 가까웠다. 성전 건축에 필요한 레바논의 최상급 향나무를 비롯하여 다량의 금은을 모았고, 흩어져있는 유능한 일꾼들도 불러 모았다.

당신은 리더인가. 수혜자가 누구일지 모르지만 미래의 꿈을 가지고 개펄에 나와 참나무를 묻는 매향의 리더가 되라. 자신은 못하더라도 후대가 할 수 있도록 준비하는 다윗 같은 비전의 리더가 되라. 이기주의의 탐욕으로 혼란에 빠져있는 이 시대는 그런 리더를 고대하고 있다.

의미요법의 창시자 빅터 프랭클은 말했다. “후대에 무엇인가 영원한 것을 남겨 주는 계대의 책임감을 가지고 살라. 인간이 된다는 것은 누군가에 책임 있는 존재가 되는 것이다.”

카테고리 최신기사

많이 본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