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효자손

2014-02-20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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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 신 용

▶ 살아 가면서

아침 책상 위에 홍삼차가 놓여 있다. 옆에는 예쁜 카드가 함께 놓여 있다.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카드를 열어보았다. 몇 번인지 말 못할 사연을 편지로 적어 책상 위에 놓고 간 경험이 있기에 긴장하지 않을 수 없었다. 한 여직원이 곱게 쓴 감사 편지였다. 긴장한 마음이 안심되었다. 어렵지만 추석 보너스를 주었더니 한국의 엄마한테 효녀 노릇을 할 수 있었다는 사연이었다. 아마 홍삼 마시고 건강하라는 뜻인가 보다.

누군가 장미 꽃다발을 사무실로 보냈다. 수신인은 아이의 엄마였다. 남편이 깜짝 놀래주려고 최고급의 장미를 와이프에게 보냈다. 신문에는 밸런타인스 데이 빨간 장미와 하트 상자의 초컬릿 박스가 컬러로 1면을 장식하고 있다. 사랑하는 연인에게 보내는 장미와 초컬릿은 1년에 한 번뿐이다. 장미의 향기가 피어나듯 직원의 얼굴에는 행복한 꽃이 피어난다.

남북 이산가족이 금강산에서 만난다고 한다. 피 속에 녹아 있는 혈육의 정이 길고도 모질다. 60년이란 긴 세월이 지났다. 가슴속 깊이깊이 간직한 보고 싶은 얼굴, 무지개처럼 피어나는 이름을 고향에서 찾아낸다. 그리워서 울고, 슬퍼서 울고, 기뻐서 우는 만남이 이산가족의 만남이다. 미국 동포 중에도 이산가족이 많다.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지만 혈육의 정은 깊어만 지는 것이 이국생활이다.


지척에 살면서도 설날에 전화 한 통 없다. 그러려니 한다. 모두가 바쁜 탓으로 돌린다. 특히 설날이면 마음이 착잡하다. 한국이 그리운 구세대와 미국에 익숙한 신세대의 설날 정서가 너무나 다르다. 오순도순 아이들과 떡국이라도 같이 먹고 싶은 마음이지만 식구들 누구도 설날 이야기를 꺼내지 않는다. 밤낮으로 열심히 일만하던 이민 1세대들의 자업자득이다. 자식도 힘든 청소년기를 보내기는 마찬 가지였는지 모른다.

아이 손에 쥔 장난감은 도둑질이었다. 8세짜리 아이 마음에 얼마나 장난감을 가지고 싶었으면 만지작거리다 손에 들고 나왔을까. 계산대의 점원에게 망신을 당했다. 손님이 한 이야기다. 앞뒤 가리지 않고 일만 하던 아버지 뒤로 아이들은 부모의 무관심 속에 내버려졌다. 그리고 자신도 모르게 도둑질을 했다. 아이에게 회초리 한 대를 친 아버지는 자신의 손바닥을 다섯 대 때리며 자녀에게 사과했다고 한다. 아버지는 바르게 자란 아이가 너무나 고맙다.

65세가 되면 건강은 나라가 관리한다. 요즈음 오바마케어에 대한 불만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메디케어가 있는 어른들은 사회보장 연금까지 받을 자격이 있으니 걱정이 없다. 그들은 어떤 효자가 정확한 날짜에 부모의 병원비 다 내주고 은행에 생활비를 보내주겠냐고 되묻는다. 아이들은 비난할지 몰라도 바보처럼 일만 하고 살아온 부모들이 존경스럽다.

초저녁부터 등이 가렵다. TV 앞 탁자 위에 효자손이 놓여 있다. 자식보다 가까이서 효자손이 기다린다. 속옷 속으로 가느다란 대나무 효자손에 등이 시원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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