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모기ㆍ개미ㆍ꿀벌

2013-12-14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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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연규 <목사 >

매 해 연말이 되면 어렵고 소외된 이웃을 돌아보자는 말이나 문구도 방송이나 신문에서 쉽게 접할 수 있는 현실이다. 많은 단체나 종교기관에서는 물론이고 각 가정이나 작은 모임에서 까지도 돈이나 물건 등을 마음속 깊은 사랑을 담아 전하고 나누는 일에 열심인 모습을 보게 된다.

성경에 기록된 예수님의 비유말씀을 인용하면 사랑을 나누는 참된 이웃의 정의는 강도만난 사람을 돌본 사마리아인이다. 예수님이 말씀하신 내용을 살펴보면 세 부류의 사람들이 나온다. 먼저 강도 만난 사람이다. 오늘날 어렵고 힘들고 소외된 사람들이라 할 수 있겠다.


또한 강도들이 나온다. 길을 가는 사람의 옷을 벗기고 때려 거반 죽게 만든 파렴치한 사람들이다. 또 한 부류는 길을 가는 사람들인데 여기에서 그냥 지나치는 종교인들이 나오고 강도만난 사람에게 자신이 가지고 있던 기름과 포도주로 상처를 싸매주고 그를 주막으로 데리고 가서 주막 주인에게 비용을 지불하고 치료해 줄 것을 부탁하는 사마리아인이 나온다.

여기에 언급된 강도들은 필경 모기와 같은 삶을 사는 사람들일 것이다. 일생을 남의 피만 빨아 먹는 모기의 삶은 어느 누구에게 도움을 주기는커녕 그 자체가 반드시 세상에서 사라져야 하는 공공의 적으로 어둠에서 악을 행하고 악을 일삼으면서도 죄의식을 느끼지 못하고 남의 것을 빼앗고 취하여야만 살아갈 수 있는 부류이고, 이 사람들은 모기 같은 삶을 사는 인생의 강도 같은 부류다.

강도만난 사람을 보고 피하여 지나간 제사장과 레위인은 분명 종교인이다. 그들은 자신의 안위만 생각하고 자신들에게 피해가 오는 일을 전혀 하지 않는 개미와 같은 삶을 사는 사람들일 것이다. 당시에 제사장과 레위인은 어렵고 소외된 사람을 돌보아야 할 의무와 책임도 있는 사람들이다. 그런데 성경에는 분명히 강도만난 사람을 보고 피하여 지나갔다고 기록하고 있다.

일생 누구의 도움도 받지 않고 누구도 도와 줄 필요도 없다고 생각하고 자신의 일만 열심히 하면 된다는 생각을 하며 이웃과도 단절하고 형제들과도 단절하고 자신이 해야 할 본분과 의무를 잊고 자기만을 위하여 돈을 벌고 그 번 돈으로 자신만을 위하여 쓰며 살아가는 사람들을 개미와 같은 삶을 사는 인생의 그냥 지나가는 부류다.

오늘날 많은 종교인들이 이 부류에 속해 있다면 세상은 얼마나 삭막하며 낯설고 어둡게 변할지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 개미는 누가 뭐라고 해도 자신의 일만 열심히 한다. 남을 돌아보지도 않고 남에게 나눠주지도 않고 자기만을 위해 굴을 파고 열심히 쌓아 놓는다. 이렇듯 세상에 개미 같은 인생이 많을수록 미래는 철저한 개인주의가 될 것이다.

참된 이웃은 꿀벌 같은 삶을 사는 사람들이다. 꿀벌은 열심히 날아다니며 암수 꽃을 서로 만나게 해 주기도 하고 꽃에 있는 꿀을 따서 동료 벌들과 사람들에게 유익도 주기도 하고 자신 스스로도 할 일을 다 하는 삶을 살아간다.

사마리아인은 선민들로 불리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배척하는 천한 신분의 사람이었다. 그러나 그는 이틀 치 노동자 품삯에 해당하는 두 데나리온을 주막 주인에게 주고 자신의 기름과 포도주도 아낌없이 사용하고 자신이 타던 짐승에 강도만난 사람을 태우고 스스로 걸으며 희생했고 자신이 가진 것을 나누는 선한 사람이었다.

그러면서 비용이 더 들면 돌아올 때에 더 주겠다고 약속하고 주막을 떠난 사마리아인은 꿀벌 같은 삶을 살아가는 사람이요. 이 땅에 꼭 필요한 사람이고, 바로 강도만난 자의 이웃이며 연말연시에 우리들이 배우고 행해야 할 롤 모델(role model; 본보기가 되는 대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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