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이민선배 유대인에 대하여

2013-12-12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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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연중 칼럼

▶ 정연중

미국은 세계 각국에서 수많은 이민자가 들어와 이루어진 다민족 사회이자 다문화 국가이다. 그래서 서로의 문화를 이해하기 위하여각 커뮤니티의 이민역사를 한 번 되돌아보는것도 흥미로울 것 같다. 그 중에도 LA 한인타운, 바로 우리와 가장 가까운 이웃, 고급주택과 아름답게 우거진 나무숲으로 이루어진 행콕팍과 그 주변에 유난히 많이 모여 살고 있는 유대인에 대해서 얘기해 보자.

알고 있듯이 유대인들은 지난 2,000여년 동안의 박해를 감수하면서도 좌절하지 않고, 여전히 세계에 흩어져 살면서도 자신들의 문화와 종교를 간직하며 오늘에 이르고 있다. 세계인구의 0.3%밖에 안 되지만 그들의 영향력은 대단하여 노벨수상자만 180여명에 이른다.

특별히 미국의 유대인들은 미국 100대 기업의 40%를 소유할 정도로 사회 전체에서 막강한 힘을 자랑한다. 그 중에도 LA타임스나 뉴욕타임스,미국 3대 TV인 NBC, ABC, CBS-TV 등 수많은 신문, 방송, 잡지 등을 이 사람들이 보유하고 있다.


그리고 그들은 이런 미디어와 영화산업 등을 이용해 미국을 유대인과 백인 중심의 세계로 바꾸고 있으며 현재 미국 내 최고 유명 대학의 교수나 재학생의 비율이 30% 정도가 될정도이다. 얼마 전까지 FRB 회장을 4회나 맡으며 미국의 경제 대통령이라 불리던 앨런 그린스펀도 유대인이다.

유랑민족이라고 불리는 유대인은 ‘몸이 재산’이란 관념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지식과 교육을중시한다. 자녀 교육에서는 학과목 성적뿐만 아니라 사회적, 감성적, 그리고 신체적으로 균형 있게 발달하도록 관심을 둔다고 하니 우리 한인들이좀 더 배워야 할 부분이다.

더욱이 자녀의 학교 행사에는 아무리 바빠도 시간을 내며, 자신의 아이들뿐만 아니라 학교를 적극적으로 돕게 되면 자기 자식에게도 이익이 된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유대 경전인 토라와 탈무드를 어릴 때부터 교육 받아서 탈선하지 않는 편이며, 선택받은 민족이란 선민사상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자신에 대한 기대치가 높고, 크게 성공하고자 하는 욕구가 높다.

그러한 이유로 유대인들의 밀집지역은 학군이 좋아서 주택가격이 높고 잘 떨어지지도 않는 편이다. 아무튼, 미국에 거주하는 유대인의90%는 100여년 전 유럽으로부터 이주한 아쉬케나지 유대인의 자손이라고 한다.

유대 이민자들도 우리 한인 이민자들처럼 초기에 아주 적은 돈을 가지고 왔지만, 지금처럼 부유해진 데는 몇 가지 이유가 있다. 우선 유대인은 다른 민족에 비해 농업 종사자보다 상공업 종사자 비율이 높으며 영리 추구를 선하게 보았고, 탈무드의 영향으로 돈을 벌고 저축하는 기술을 어릴 적부터 몸에 익힌다.

그리고 그들은 부자도 검소하게 사는 전통이 있는데 이는 유럽에서 호화롭게 살면 반유대주의로 인하여 핍박을 받았던 경험이 많기 때문이라고 한다.

한 가지 더 성공의 중요한 이유를 들자면, 유대인은 동족에게 이자를 받고 돈을 빌려주는 것이 율법에 금지되어 있으므로, 미국에서 부자가된 유대인들은 거액이라도 새로운 동족 이민자들에게 무이자로 돈을 빌려주며 정착을 도왔다고 한다.


한편, 1960년대까지 미국의 대기업들은 유대인의 고용을 금지하였는데 이것이 유대 젊은이들이 영화, IT, 금융, 유통 등 새로운분야에 진출해 성공을 거두는 계기가 되었다.

위기를 기회로 삼은 지혜가 돋보이는 일이다.

그렇다면 유대인의 미국 이민은 어떻게 시작되었을까? 16세기 중반 네덜란드의 서인도회사에 속해 브라질의 설탕농장과 원목 벌채에 투입되었던 브라질계 23명이 뉴욕에 도착하여 정착하게된 것이 시작이다.

그 후 1723년 미국 최초의 유대인 교회가 뉴욕에 세워져 유대사회의 중심지가 되었다. 19세기 초에 500만명 이상의 독일인이 미국으로 이주하여 앵글로색슨에 이어 두 번째로 큰 커뮤니티가 되었는데, 이들과 함께 독일 시골 출신 30만명의 유대인도 함께 온 것이 본격적인 이민의 시작이다. 비슷한 시기에 러시아 및 동유럽 출신 260만명의 유대인들이 또 미국으로 들어왔다. 세계 각지로 디아스포라가 되어 억압과 가난 아래 살던 유대인들이 탈출구로 신대륙을 선택한 것이다.

당시 미국은 남북전쟁 중이이서 수천명의 유대인이 남군, 혹은 북군으로 참전하기도 했다.

이들 독일계 유대인은 유럽의 산업혁명을 체험한 세대이기 때문에 미국의 상공업 분야에 진출하였고 은행업에도 많이 종사하게 된다. 이미 유럽 금융의 절대강자였던 로스차일드나, 골드만삭스 가문 등 독일계 유대인이 미국 금융계의 시조가 된다.

그런데, 독일계 유대인은 교육수준이 높은 중산층이 많았지만 러시아계 유대인은 못 배우고 가난한 사람들이 대부분이었다. 그들은 범죄에빠지는 경우도 많아 유대인에 대한 인식이 나빠지게 되나 곧 각종 사업에 성공하는 인물들이나오게 된다. 그리고 독일계 유대인은 학교나 병원사업에 주력한 반면 러시아계 유대인은 급진사회주의 정당이나 과격한 노조운동에 참여하게 되고, 아직도 두 집단은 다른 성향을 보이고있어서 자주 대립하는 것도 있지만 명분이 있는일에는 언제나 협조가 잘 된다고 한다.

극우민족주의 나치즘이 독일과 유럽에서 휩쓸던 1930~40년대에 약 10만명의 전문직 유대인이 핍박을 피해 미국으로 이주하고, 그런 유대계 지식층들은 당시 유럽에 비해 뒤떨어져있던 미국의 과학기술, 학문, 문화예술을 크게 발전시키는데 이바지하면서 점차 미국을 손아귀에 넣게 되는 것이다. (213)272-12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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