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20년을 완주하다!

2013-12-16 (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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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병렬(교육가)

장거리 마라톤대회가 끝나고 일반에게 알려지는 이름은, 우승자와 열째 안에 들어있는 선수들이다. 그런데 빠지지 않고 알려지는 또다른 이름이 있다. 달린 시간에 관계없이 끝까지 완주한 꼴찌의 이름이다. 이를 생각하면서 오피니언 20년을 완주하였음을 자축한다.

며칠 후로 다가온 2013년 말에 마라톤이 아니고, 이 지면에 실린 오피니언 집필 20년을 맞이한다. 글이 좋고 나쁜 것에 관계없이, 일에 대한 약속을 지켰음이 상쾌하다. 누구하고의 약속이었나? 신문사와의 약속도 있었지만, 그것은 언제든지 바꿀 수 있다. 더 소중한 것은 자기 자신과의 약속을 가리킨다. 이 기회를 활용해서 나 자신을 키워보자던 생각을 말한다.


과거 20년 동안, 공적으로, 사적으로 맡은 일들이 많았다. 하지만 그와는 성격이 다른 집필은 내 자신에게 많은 공헌을 하였다. 우선 아무렇게나 살지 않았다. 항상 무엇인가 생각에 생각을 거듭하면서 생활하였다. 또한 그 생각들이, 보는 각도나 서술 방법이 개성적이길 바랐다. 특히 한국과 미국 생활을 체험한 사람의 입장에서 새로움을 개척하는 글이 되기를 바랐다. 발표된 글들이 이런 염원들을 느끼게 하였는지 의문이지만, 나로서는 그 방향으로 노력하였음을 밝힌다.

필자가 공적으로 글쓰기를 시작한 것은 1962년 신문사가 모집한 ‘일선 교사의 수기’에 입선한 후의 일이다. 글을 쓸 일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생겼다. 몇 잡지사에선 1~2년의 연재를 부탁하였고, 이는 64년 말 두 번째 미국 유학까지도 계속되었다. 이러한 현상은 글솜씨가 우수하기 때문이 아니라고 본다. 교사직에 있는 사람의 학생들을 보는 시각이 달랐기 때문일 것이다. 또한 글쓰기의 새로운 형식의 하나로, 완결된 토막이 모여서 하나가 되는 새로운 연재물 형식을 취한 까닭이라고 생각한다. 이는 다음 연재를 기다릴 필요가 없다. 즉, 매회 게재되는 글을 통하여 하나의 상념을 정리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

그런데, 글을 쓴다는 것은 저자와 독자 중, 어느 쪽에 이득이 많을까? 어느 분이 원고료를 묻기에, 이쪽에서 귀한 지면을 받았으니 사용 지면의 rent를 내야 한다고 답변하였다. 진담이다. 그 이유는 글을 쓴 당사자인 자기 자신이 더 많은 혜택을 받음이 확실하다. 글을 쓴다는 것은 또하나의 자기 표현이다. 벌거벗고 다른 사람 앞에 서는 것이기 때문에 있는 대로의 자기를 보일 수 밖에 없다. 특히 집필이 오래 계속된다면 카무플라주하는 재주가 없다. 바라건대 언제나 새로워야 하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다. 이렇듯 여러 가지 어려움을 이겨나가는 과정은 그대로 자신의 성장을 이끄는 작업이었다.

어렸을 때 먹는 것, 입는 것, 장난감, 하는 일, 친구...등에 쉽게 물리는 습관을 고치려던 생각은 자신을 변화시켰다. 하고 싶은 일, 하고자 하는 일을 붙들면 놓지 않기로 하였다. 그 대신 사람이나, 일의 선택을 신중히 하였다. 70여 년을 사귀는 친구가 있으며, 아직도 50여 년간 연말이나 연초에 서로 인사하는 옛 학생과 옛 학부모가 있다. 어떤 학부모님한테서는 내년에도 연하장을 보낼 수 있기를 바란다는 카드가 며칠 전에 일본에서 왔다. 이 분과는 50년이 넘는 귀한 교류이다.

그러고 보면 20년 동안 오피니언을 썼다는 것은 아직도 어린 나이다. 미국에서 한국학교 일을 한 것이 거의 50년이 된다는 것도 아직 어리다. 바라건대 한국과 미국을 합해서 교직생활 70년을 자축하고 싶지만, 그것은 행운이 따라야 나머지 3년을 채울 수 있다. 이유는 없다. 본인의 집념 때문이다. 그 중의 하나가 오피니언 20년 집필 완주다. 언제까지 글을 쓸 것인가? 생애 끝까지 무엇인가 생각하면서 마치고 싶은 것이 부질없는 욕심이다. 말하자면 나는 욕심쟁이다.

세상이 급격하게 변화하고 있다. 그러나 그 저변에 흐르는 인간성만은 여전하다. 넬슨 만델라의 고별식에 온 세계가 참가하였다. 그의 인간 사랑에 공명하면서 경의를 표한 것이다. 글쓰기는 글을 통하여 친구를 모으고, 사랑을 나누는 작업이다. 그러나 어느 날 독자들이 그만 읽겠다고 데모를 하면 끝이다. 바라건대 서로의 우정을 글로 이어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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