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인드라망

2013-12-04 (수)
크게 작게
여주영(주필)

몇 년 전 한국에서는 배우 문근영이 남몰래 선행을 베풀었다고 하는 보도가 나가자 네티즌들의 악플이 기승을 부려 본인이 매우 당혹해 했다는 기사를 본 적이 있다. 그만큼 한국인들은 선행이나 기부 등 남을 돕는 자선행위에 인색한 것일까.

미국의 철강 왕 카네기는 “부자의 모습으로 삶을 마감하는 것은 정말 부끄러운 일”이라는 말을 남겼다. 그 만큼 그는 활발한 자선활동을 펼쳐 ‘위대한 기부자’라는 이름으로 명예의 전당에 올랐다. 자선행위나 기부에 대한 미국인들의 인식이 얼마큼 한국인들의 의식과 다른 가를 여실히 보여주는 결과이다.


얼마 전 아름다운 재단이 발표한 한국인의 기부지수를 보면 지난해 55%로 2년 전에 비해 무려 13.6%나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무엇보다 개인적 기부가 월등히 낮아졌다는 것이다. 기부해서 화제를 모으는 것이 주로 기초생활 수급자 등 가난한 빈곤층이라고 한다.

매년 연말이 되면 남을 위해 아름다운 일을 해서 감동을 주는 미담기사가 여기 저기 눈에 띤다. 그러나 갈수록 경기침체의 악화로 남을 돕는다는 기사는 예전보다 많지 않다. 내가 가진 소유를 나누는 작은 나눔과 사랑의 실천이 소외되고 힘겨운 이웃들에게 큰 힘이 되고 그들에게 용기를 줄 수 있는 생의 원천이 되었으면 한다.
우리가 소유한 물질은 이 세상을 살면서 꼭 필요한 요소임에 틀림없다. 하지만 공동체 안에서 모두가 같이 더불어 잘 사는 의미있는 삶이 더 중요하지 않을까.
불교의 화엄경에 ‘인드라망’이라는 그물이야기가 있다. 안드라망은 반짝이는 보석이 끝없이 매달려 있는 거대한 그물을 말한다. 인드라망 보석들은 서로 빛을 주고받는다. 하나의 보석이 다른 보석들에게 주고, 빛을 받은 이들 보석은 또 다른 보석에게 빛을 주게 되는 것이다. 인드라망은 세상의 모든 구성원이 보석처럼 귀한 존재이며 각각은 서로에게 빛과 생명을 주는 구조 속에 공존한다는 진리를 상징한다. 이는 삼라만상의 관계가 경쟁이 아닌 협동에 의해서만 조화를 이룰 수 있다는 가르침을 던져준다. 어떤 보석도 외부의 도움 없이 홀로 빛나지 못한다는 뜻이다.
연말이 되자 거리에는 벌써부터 이웃사랑을 실천하자고 구세군 자선냄비가 종소리를 울린다. 원래 타국의 문화이던 이 자선냄비는 세월이 흐르면서 매년 연말이면 ‘이웃사랑’의 상징으로 인식돼 오고 있다. 이 자선냄비가 뜨겁게 끓을수록 우리 사회는 밝아지고 나와 내 이웃 모두가 행복해지게 마련이다. 그러나 우리 현대인은 갈수록 나만의 이익을 위해 주변도 아랑곳 않고 정신없이 달리고 있다.
사람은 사랑을 받을 때보다 줄 때 더 큰 보람과 기쁨을 느낀다고 한다. 노벨문학상을 받은 헤르만 헤세의 작품 중에 아이를 갈망하던 어느 부부가 얻은 아이 이름의 단편 ‘어거스터스’가 있다.

그가 태어나기 전 한 노인이 그를 임신한 부인에게 나타나 아이를 위해 한 가지 소원을 들어주겠다고 하였다. 그 부인은 “아이가 모든 사람으로 부터 사랑을 받으면서 자라게 해 달라”고 했다. 이 아이는 정말 어머니의 소원대로 많은 사람들로부터 사랑을 받으면서 자랐다. 그가 이렇게 받기만 하고 자라다 보니 주위 사람들이 하나 둘씩 모두 그를 떠나 결국 그의 삶은 몹시 외롭고 우울한 나날이었다.

노인이 다시 나타나 어거스터스에게 또 한 차례 소원을 물었다. 그는 주저 없이 남들을 사랑하면서 사는 사람이 되게 해달라고 하였다. 진정한 삶의 행복, 나눔의 본질은 받는 것보다 주는 것에 있음을 말해주는 교훈적 이야기다.

매년 12월을 나눔의 계절이라고 한다. 앞만 보고 살아왔던 한 해를 마무리하며 나눔으로 이웃사랑의 소중함을 다시 한 번 깊이 깨닫는 연말이 되었으면 한다. 서로서로 나누고 베풀다 보면 살을 에이는 추위도, 각박하고 메마른 인심도 어느새 사라지고 따스하고 훈훈한 기운, 감사와 기쁨이 우리 사회에 넘쳐날 것이다.
juyoung@koreatimes.com

카테고리 최신기사

많이 본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