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얼마든지 있단다

2013-12-02 (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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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병렬(교육가)

동요 ‘토끼야’의 노랫말에는 사랑이 가득 담겼다. ‘토끼야, 토끼야/ 산속의 토끼야/ 겨울이 되면은/ 무얼 먹고 사느냐?/ 흰 눈이 내리면은/ 무얼 먹고 사느냐?// 겨울이 와도/ 걱정이 없단다/ 엄마와 아빠가/ 여름동안 모아논/ 맛있는 먹이가/ 얼마든지 있단다. 어린이들에게 이웃을 사랑하라고 설명할 필요가 없겠다.

‘토끼야‘노래를 거듭거듭 부르는 동안에 이런 마음이 자연스럽게 싹트고 자랄 테니까. 특히 이 노랫말에는 우리들에게 주는 말이 두 가지 들어있다. ‘걱정이 없단다‘와 ‘얼마든지 있단다’ 이다.


우리의 일상생활에서 걱정이 없는 날이 드물다. 이래저래 걱정하면서, 아니 걱정을 즐기면서 사는 것 같다. 그런데 걱정이 없다는 말은 행복의 다른 표현이라고 할 수 있다. 가족의 건강, 의식주를 위해 살아갈 방법, 자녀 교육의 현실, 적절한 사회 참여...등 아무 걱정이 없다면, 이는 바로 ‘행복하다’는 표현이다. 우리는 앞에 열거한 일들 때문에 주야로 마음을 쓰는 것이 걱정의 내용이다.

그런데 전연 ‘걱정’이 없다면 좋은 것일까. 우리의 생활에는 끊임없는 자극이 필요하다. 아무 자극이 없다면 졸기에 알맞다. 졸린 상태는 감미롭다. 꿈속으로 빠져드는 그 순간은 온 세계가 아늘거리다가 어느새 잠속으로 빠진다. 그렇다고 이런 상태만이 계속된다면 우리는 자극제를 필요로 한다. 걱정거리가 자극제의 한 종류일 수 있다. 어떠면 걱정거리가 없는 세상을 바라기 보다는 현명하게 걱정거리의 숲을 빠져나가는 지혜가 필요하지 않을까.

어떻게? 이왕 닥친 것이니까 여러 번 체로 체질을 하여서 걱정거리를 걸러내는 일이다. 걱정거리의 무게에 따라, 시기에 따라, 영향에 따라 선후가 정해지면 과감하게 한 때 한 가지만 남기고 나머지를 아예 날려버리는 것이다.

노랫말 중에서 또 하나의 값진 말을 ‘얼마든지 있단다’로 본다. 산토끼는 맛있는 먹이가 얼마든지 있다고 하였지만, 생각하는 방법도 얼마든지 있다. 인류는 생각하는 힘으로 문화˙문명의 발달을 이루었다.

생각이란 무게도 형태도 없지만, 세계를 짊어지고 앞으로 나간다. 또한 다행히 누구나 생각하는 힘을 가지고 있지만, 구별이 되는 점은 쉴 새 없이 생각하는 사람과, 생각하려는 마음의 문을 잠가버린 사람의 차이다. 살아있는 모든 것이 자라는 것은 즐거운 일이다. 어려운 일을 해결하고, 꼬인 것을 풀고, 있던 것을 없애고, 없던 것을 만들면서 앞으로 나가게 하는 것은 생각의 원동력이다. 그래서 ‘생각은 얼마든지 있단다’는 말을 소리 높이 외친다.

‘말’은 무엇보다도 강한 힘을 가지고 있다. 실망한 사람에게 용기를 줄 수 있고, 주저앉은 사람을 일으켜 세울 수 있고, 그릇된 길로 들어선 사람에게 갈 길을 알려줄 수 있고, 적적한 사람에게 친구가 될 수 있고, 고마운 사람에게 감사한 마음을 전할 수 있고, 폐를 끼친 사람에게 미안한 마음을 전할 수 있다.

이렇게 보면 사람과 사람을 연결 지어 주는 것이 말이다. 우리가 기억하는 바벨탑의 신화는 인간들의 오만을 말로 제재한 하나의 예언이다. 이왕이면 이렇게 값진 말을 유효적절하게 사용하도록 노력하고 싶다. 서로의 좋은 관계를 유지할 수 있고, 상호 격려할 수 있고, 생산적인 성과를 낼 수 있는 말을 교환한다면 세상은 더욱 밝아질 것이며, 상호간의 이해가 잘 될 것으로 안다. 그런데 이런 말들의 바탕은 생각임이 중요하다.

어디 한 번 어린이들에게 물어보자. ‘얼마든지 있단다’와 ‘걱정이 없단다’ ‘얼마든지 있단다’를 바르게 이해하였는지 알고 싶다. 그들의 답은 다음과 같은 노래로 돌아왔다. ‘친구야 친구야, 필리핀 친구야/ 배가 고프면, 무얼 먹고 사느냐?/ 비가 오면, 어디서 자느냐?/ 친구야 친구야, 걱정이 없단다./ 배가 고파도, 집이 없어도/ 온 세상에 사랑이 얼마든지 있단다.

귀한 노랫말이다. 얼마든지 있는 사랑을 주고받으며 걱정 없이 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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