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금맥보다 인맥

2013-11-22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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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병임 <논설위원>

메트 뮤지엄에 전시 중인 ‘황금의 나라, 신라전’에 들어서면 특이한 장식의 금과 초록빛 옥으로 꾸며진 황남대총 금관과 허리띠, 목걸이, 귀고리, 반지를 보고 눈이 황홀해진다. 신라왕족과 귀족들이 걸치고 치장한 순금 장식물은 1,500여년이란 긴 세월을 지나 여전히 찬란하고 우아하게 살아있다.

최근 점점 날씨가 차가와지면서 월동준비에 다들 바쁘다. 월동준비의 첫째는 긴긴 겨울 먹고 지내는데 걱정 없는 넉넉한 생활비일 것이다. 풀린다, 풀린다 하면서도 좀체 경기회복이 되지 않는 요즘, 장사가 잘되는 사람이나 겨우 현상유지를 하는 사람이나 춥고 긴 겨울을 나기가 쉽지 않다.


여기저기서 “월동준비가 잘 되어야 이번 겨울 따뜻하게 보낼 텐데”, “아메리칸 드림이 복권 드림인데 사기만 하면 꽝이네”, “노다지라도 캐러 가고 싶다”고들 한다.

일확천금이나 횡재를 뜻하는 우리말 ‘노다지’는 영어로 ‘노터치’(No touch)‘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일제 치하에서 금광 개발의 이권을 쥔 미국을 비롯한 외국인 광산주들은 금이 나오자 값싼 임금, 거친 노역에 동원된 가난한 인부들이 금을 훔쳐갈 까 ‘노터치’를 외쳤다고 한다. 여기서 나온 ‘노터치’가 나중에 ‘노다지’가 되었다니, 가슴 아픈 식민지사다.

미국의 캘리포니아 골드러시는 유명하다. 금이 최초로 발견된 것은 1848년 1월 24일 시에라 네바다 산맥 서쪽 산자락 아래의 작은 마을 콜로마를 흐르는 강가에서였다.

어느 날 목수 마샬은 강가의 얕은 물 밑에서 금빛으로 빛나는 돌멩이를 발견했고 이를 본 땅 주인 셔터는 금광석임을 알았다. 금이 발견되었다는 소문은 전국으로 퍼져갔고 미국은 물론 전 세계에서 노다지를 캐러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금을 찾으러 온 10만명 이상의 사람들은 모두 성공했을까. 대부분 일확천금 대신 빈털터리로 남았다고 한다. 금을 발견해 바꾼 돈을 술과 도박으로 날리거나 채굴 장비나 도구를 구입하면 남는 것이 없었다. 돈을 번 것은 숙박과 식당 등 서비스업과 금 캐는 물자와 장비 제공회사였다. 과거에는 금을 발견하면 모두 왕이나 지배층의 것이었지만 골드러시는 평범한 사람들도 금을 찾아내면 자기 것이 된다는 점에서는 아메리칸 드림을 만들어냈다.

1853년 골드러시는 끝났지만 이 지역에 자본이 축적됐고 오늘날 실리콘 밸리가 출현했다. 실리콘 밸리에 큰 역할을 한 스탠포드 대학교는 뉴욕에서 서부로 금을 찿아와 금광과 철도업으로 부를 일군 릴런드 스탠포드가 설립했다.
지난 2011년 금값이 폭등하면서 캘리포니아주 해안 바닷가와 시에라 네바다 산맥 등으로 금을 찾으러 나서는 일반인들이 늘었다고 한다. 제2의 골드러시 바람을 맞아 폐광이 된 금광을 찾아 다시 채광을 추진하고 있는 것이다.

몇 년 전에는 미국 케이블TV 디스커버리채널에서 ‘알래스카 골드러시’라는 리얼리티 프로그램이 인기를 끌었다. 지금도 알래스카 관광객들에게 금광 체험 프로그램이 필수라고 한다. 주최측이 포크레인으로 퍼온 흙을 봉지에 담아 파는데 이 흙을 채에 담아 물속에 넣고 살살 흔들어 금 알갱이 찾기에 다들 혼을 빼고 있다.
아무리 ‘황금 보기를 돌같이 하라’고 이성은 속삭여도 영원히 썩지 않는 불멸의 보석 황금을 보면 누구나 눈이 반짝 하는 모양이다.

그런데 사람들에게는 부부나 부모 자식, 친지, 친구들을 이르는 인맥(人脈)이란 것이 있다. 이는 산이나 강에서 줍거나 시장에서 돈을 주고 사오는 금맥(金脈)하고는 비교할 수 없다. 평소 사이가 나쁘거나 데면데면하던 가족들도 오는 28일 추수감사절에는 함께 모여 터키를 먹는다. 웃고 떠들면서 그간 깊이 파인 골을 메우는 시간을 가진다.

새삼, 메트뮤지엄 특별전시장 배치가 멋져 보인다. 황금빛 찬란한 골드의 세계에 푹 빠져 있다가 돌아서 가면 은은한 조명 속에 깊은 사색에 잠긴 금동미륵보살 반가사유상을 만나게 된다. 방금 전 물질적 욕망에 눈을 크게 떴던 사람들은 마음이 가라앉으며 영원의 세계가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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