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일만 일의 법칙’

2013-11-20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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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저널리스트 말콤 글래드웰은 전 세계적으로 화제를 불러 모은 그의 저서 ‘아웃라이어(Outlier)’에서 천재성을 밑천으로 큰 성공을 거둔 인물들을 사회의 ‘아웃라이어’라고 칭했다. 책 제목인 아웃라이어는 본 체에서 분리되거나 따로 분류되어 따로 노는 말 그대로, 특정한 틀의 안쪽이 아닌 밖에 머물고 있는 사람을 뜻한다.

그가 컴퓨터 황제 빌 게이츠나, 희대의 괴짜 스티브 잡스, 특히 전설로 불리우는 비틀스 등 이 시대 아웃라이어들이 성공 할 수 있었던 결정적인 공통분모로 꼽은 것이 ‘만 시간의 법칙’이다.

1년 365일, 8,740시간 중에 과연 몇 시간이나 우리는 특정한 일에 몰입해서 제대로 된 전문성을 확보할 수 있을까? 만 시간을 투자해서 노력한다면 특정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낼 수 있다는 주장이다. 즉 하루 24시간 중 최소한의 생명유지를 위한 일들을 제외한 나머지 10-20시간 동안 한 가지 일에만 약 3년 동안 한 우물만 파게 되면 자연스럽게 전문가가 될 수 있다는 이론이다.


이 법칙처럼 우리의 생에도 ‘일만 일의 법칙’을 적용해 보면 어떨까. 인간의 평균나이 80을 기준으로 했을 때 우리는 과연 며칠이나 이 지구상에서 이웃과 가족들과 얼굴을 맞대면서 살아갈까?

어림 계산을 해보면 10년이면 3,650일, 30년이면 일만(10,000) 일을 조금 넘기는 정도이다. 우리가 태어나 학창시절을 보낼 때 까지는 부모님이나 선생님들의 지도와 통제 속에서 살아간다. 그러다가 실제로 자율적인 판단과 모든 사회적 책임을 지기 시작하는 것은 기실 성인이 된 20세 이후부터 이다. 그 시점부터 따져 본다면 우리의 80인생은 전반부인 약 50살 때까지의 일만 일과 후반부인 80살 정도까지의 일만 일로 자연스레 구분된다.

인생의 전반기는 결혼하고 아이를 낳은 후 그들이 대학졸업, 즉 성인이 될 때까지 뒷바라지 하는 이타적인 삶의 기간이 된다. 대략 50세부터의 인생 후반기야 말로 자아를 확연하게 느끼는 한 독립적인 객체로서 스스로 심은 인생의 씨앗들을 오롯이 추수하게 되는 시기이다.
살면서 한순간의 횡재를 노리거나 한판의 도박처럼 인생을 살아온 사람들은 비참한 말년을 맞을 수밖에 없다. 반대로 아름다운 씨앗을 심어놓고 꾸준히 묵묵하게 정성으로 인생의 밭을 가꾼 사람들은 누구나 풍요로운 황혼을 맛볼 수 있다.

우리의 고달픈 이민역사도 각자의 색깔이나 모양은 다 다르겠지만 결과적으로는 모두 같은 궤적을 그리지 않을까? 전반부 일만 일은 어떻게든 자립하기 위해 조금도 쉴 새 없이 일에 치이고 아이들에 매달리고 했던 기간이다. 그러다 보니 어느 것 하나 제대로 된 씨앗을 뿌리지 못한 것은 아닌가 하는 회환이 남는 경우도 없지 않다. 어느 누가 계획대로, 뜻한 대로 전반부 생의 일만 일을 살았다고 자부할 수 있을까. 가슴 한구석 못내 아쉽고 후회스러운 아픔이 한 두 가지씩은 대체로 있다.

이제 인생후반의 일만 일이야 말로 지금까지 자신을 얽어맸던 모든 속박에서부터 자신만의 생의 참 의미를 찾아 진실된 여행을 떠날 수 있는 시기이다.
수확의 계절이자 사색의 이 계절에 여름 내 푸르렀던 나뭇잎이 어느새 형형색색으로 물든 단풍이 되어 거리에 수없이 떨어져 뒹구는 모양은 마치 우리 이민 1세대의 말년의 모습을 보는 듯하다.

어떠한 난관과 역경에도 불구하고 어느 민족보다 부지런히, 성실하게 일해온 한인 1세들. 이제 굵게 패인 이마의 주름살과 히끗히끗한 반백의 머리칼만이 노년의 빛을 더 아름답게 발하고 있다.

70년대 부터 미국행을 시작한 한인 1세대의 인생 유람선도 어느 덧 후반부 일만 일의 중간지점을 넘어 마지막 휘슬이 울리는 종착역을 향하고 있다. 한 사람도 낙오 없이 유종의 미를 거둘 수 있도록 서로가 돕고 배려하며 마지막까지 아무런 문제없이 잘 항해해야 하지 않는가. 배가 난파해서는 안 될, 우리 모두 한 배를 탄 이민의 동료들이다.

여주영(주필)juyoung@korea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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