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어느 여성의 죽음

2013-11-16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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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재옥(의사)

얼마 전 한국에서는 한 여성이 성형수술을 받은 후 숨졌다. 차라리 수술을 받지 않았더라면 죽지는 않았을 것을... 너무 가엾다. 출혈흔적이 없으니 수술에는 아무 이상이 없었단다.

이미 죽어버린 송장에서 어떻게 출혈이 생길 수 있을까 의문이 앞선다. 아무런 혈흔 상처가 없음은 약물중독으로 인한 타살이 분명하다. 의사 잘못도 아니란다. 귀신이 곡을 할 노릇이다. 그렇다면 멀쩡한 여성이 왜 죽었을까?


국과수 부검결과는 저산소성 뇌손상으로 판정이 나왔다. 사실 모든 사망원인은 산소부족 때문이다. 산소 양은 시시각각으로 모니터링이 되며 조금만 낮아도 즉각 경종이 울린다. 그래서 얼마든지 대처가 가능하다.

이 경우 무엇이 산소결핍을 가져왔는지 그 원인을 밝혀내 적절한 응급조치를 취했어야 했다. 5분이내로 심폐소생술을 시행했더라면 아마도 충분히 살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무죄판결이 내려진 것은 진위를 판가름도 하기 전에 사전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잘못된 결과이다. 이것이 황금만능주의, 돈이면 명백한 살인도 무죄가 되는, 사인도 조작되는, 경찰 검찰도 매수되는 무법천지 한국의 실상인가.

사실 이 환자를 죽음에 몰아넣은 것은 마취약 때문이다. 누군가가 불법으로 극약을 주사했고 환자를 내팽개친 것은 아닐까. 인술을 다루고 사람을 살리는 의사에게서 어떻게 이런 일이 발생할 수 있었을까. 미국에서는 사후 즉시 다량의 피를 뽑아 무슨 약 때문인지 그 원인을 가려낸다. 무덤을 파헤쳐 까지도 반드시 진위를 밝혀내 범인을 색출한다.

자기 전공이 아닌 생명을 다루는 마취약을 함부로 손대는 의사는 거의 없다. 만일 그런 의사가 있다면 그는 살인자나 마찬가지다. ‘DO NO HARM TO OTHERS-남을 해치지 말라’는 히포크라테스 선서나 존 웨슬리목사의 가르침을 벌써 잊은 것인가.
팝 가수 마이클 잭슨을 사지로 몰아넣은 프로포폴(propofol)은 우유처럼 하얀 빛깔의 마취약중 가장 극한 독약이다. 일명 ‘우유주사’라고도 불린다. 주사 즉시 의식이 없어지고 마취의사의 도움 없이는 사망할 가능성이 대단히 높다. 따라서 전문의 외에는 절대 사용 못하도록 법으로 강력하게 규제되어 있다. 모든 수술전에는 반드시 마취의사를 만나야 한다. 마취전문의 없이 수술에 임함은 마치 귀신에 홀려 도살장으로 끌려가는 어린 양이나 다를 바 없다.

만약 의료사고 발생시에는 뇌사를 방지하기 위해 즉각 심폐소생술을 시행해야만 식물인간이 되는 것을 면할 수 있다. 마취의사는 위기에 직면한 생명을 살리기 위해 평생 수련을 쌓는다. 마치 파일로트가 오랜 비행시간을 필요로 하는 것처럼 의학도 고도의 경험을 쌓아야 하는 학문이다.

하나님은 아담을 잠재운 후 갈빗대를 꺼내 하와를 탄생시켰다. 그분은 최초의 마취의사였고 깊은 잠에서 우리를 항상 깨워주신다. 가끔 힘든 수술도중 생사기로를 해매는 환자들을 접할 때는 저 멀리 피안, 높은 곳에서 도움을 주시는 신의 임재를 느낀다. 만일 수면을 원하는 환자가 있다면 반드시 마취전문의와 미리 상담을 하기 바란다. 다시는 이런 불법살생, 불상사가 일어나는 일이 없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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