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미국 부자, 한국 부자

2013-11-15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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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병임(논설위원)

요즘 뉴욕에는 가볼만한 전시회가 많다. 메트 뮤지엄의 ‘황금의 나라, 신라전’에 한인보다 훨씬 많은 미국인들이 몰려들고 프릭 컬렉션에는 1984년이후 처음으로 뉴욕방문을 한 베르메르의 ‘진주귀걸이를 한 소녀’를 보러 관람객들이 장사진을 이루고 있다.

‘왼쪽 어깨너머로 관람객을 바라보는 맑고 투명한 눈동자의 귀걸이 한 소녀’는 워낙 유명하니 전시장인 프릭 컬렉션 이야기를 해보자.프릭 컬렉션은 피츠버그의 철강왕 헨리 클레이 프릭(1849~1919)이 르네상스 회화부터 19세기 작품까지 평생 모은 약 1,100점의 소장품과 건물을 정부에 기증하여 재단장 후 1935년부터 일반인들에게 미술관으로 공개되고 있다.


피츠버그에서 뉴욕으로 이주하며 맨하탄 이스트 70가에 직접 집을 지어 이곳에 살았던 프릭과 그 부인이 사망한 후 가족들에 의해 정부에 기증되었다. 우아하고 호화로운 맨션 안에는 16세기 유럽 가구와 렘브란트와 르노와르의 그림, 도자기, 조각, 샹들리에가 눈부시게 아름다웠다.

미국은 18세기 남북전쟁이 끝나고 본격적으로 산업화가 진행되며 철강, 철도, 해운과 항만사업을 독점하며 돈을 어마어마하게 번 재벌로 앤드류 카네기, 라커펠러, 밴더빌트 등이 있다. 그들은 사후 카네기홀, 카네기멜론 대학, 라커펠러 센터, 라커펠러 유니버시티, 밴더빌트 대학으로 이름이 남았다.

미국 부자들이 천문학적 가격의 소장품을 그대로 둔 집을 기증하고 연구소나 대학 등을 세워 미래를 위한 투자를 한 점이 부럽다. 물론 지금도 재벌의 상속인들이 세계 경제를 주무르고 있긴 하지만.

미국 부자와 한국 부자는 비교가 안되지만 그래도 한국 재벌 중에 손꼽히는 사람이 제법 있다. 한국의 재벌 역사는 그리 길지 않다. 1950년대는 전쟁 후 물자가 부족하던 때라 판매 걱정 없이 제당, 제분, 섬유, 시멘트를 중심으로 자본을 축적했고 기업들은 차관과 은행 차입으로 큰 혜택을 받았다. 60년대의 수출 드라이브 정책, 월남 특수, 국토사업 개발에 따른 부동산 투기로 부를 축적했고 70년대는 중동 특수에 건설 경기, 종합무역상사제 도입 등으로 재벌은 고속 성장했다. 80년대에는 재벌기업들의 금융권 진출 등 정경유착은 점점 심해졌다.

이렇게 탄생한 재벌그룹으로 삼성, 현대, 코오롱, LG, 선경 등이 있다. 이들 대기업이 설립한 미술관은 삼성의 리움ㆍ호암미술관, SK그룹의 아트센터 나비, 대우그룹의 아트선재센터, 쌍용그룹의 성곡미술관, 금호아시아나의 금호미술관 등으로 10여개가 있다.

이중 리움이 사들인 리히텐 슈타인의 ‘행복한 눈물’이 삼성 비자금 관련사건으로, 성곡미술관은 신정아사건으로 연일 매스컴을 탔었다. 전문성과는 상관없이 재벌 총수의 부인이나 딸, 며느리가 운영하는 미술관이 비자금과 돈세탁 창구로 사용되니 비난을 받을 수밖에 없다.

그 중 간송미술관은 고 전형필 선생이 일본인에 의해 해외반출 되는 고서와 국보급 미술품들을 자신의 전 재산을 내놓고 구매한 작품 전시관으로 매년 5월과 10월 일반 공개 무료전시회를 연다. 미국에 살다보니 개관시기를 못 맞추어 한번도 못 가보았지만 간송미술관을 다녀온 한 지인이 운영자금이 부족하다보니 낡고 오래된 전시장의 고서들이 썩고 상하지 않을까 걱정하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지난번 전두환 전대통령의 비자금 은닉사건을 수사하면서 창고에서 그림과 도자기, 불상 등 고가의 미술품들이 줄줄이 쏟아지던 것을 기억할 것이다. 이는 미술품에 대한 모독이다. 혼자 보고 즐기다가 자자손손 물려주니 이야말로 허영과 탐욕 이다.

이번 ‘황금의 나라, 신라전’의 디지털 동영상 등에 삼성이 후원했다고 한다. 머잖아 이병철과 정주영이 살던 집은 물론 리움 미술관, 아트센터 나비, 간송미술관 등의 소장품들이 모두 나라에 기증되기를 바란다. 남긴 이의 이름을 딴 미술관으로 재단장, 전문인력에 의해 관리, 보호되며 일반인들이 쉽게 갈 수 있기를 기대한다. 미국 부자나 한국 부자나 죽어서 모두 빈손으로 가던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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